피의자 임수경은 89.5.18 경기도 수원시 신갈소재 경희대 분교에서 개최된
"용인/성남지역 총학생회 연합" (용성총련) 가입, 각 대학의 평양축전준비
위원장회의에 참석, 용성총련 평축준비위원장으로 김평수(23. 경희대 공대4)
를 선출하고 사실상 이 조직의 실무와 전대협과의 연락업무를 장악하고 있는
정책기획실장의 피의자가 임명됨으로써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할 목적으로
조직된 전대협 산하평축준비위원회 구성원이 됨으로써 이적단체에 가입했다.
89.6.1 23:00부터 다음날 05:30까지 대전시 소재 한남대 총학생회회의실에서
개최된 전대협 및 산하 각지구 평축준비위 정책기획실장회의에 참석, 회의
개최후 익일 18:00시께 전대협 정책기획실장 이명훈(23. 가명)과 함께 고속
버스편으로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날에 도착, 그로부터 "할 얘기가 있으니
만나자"는 약속을 받고 같은날 하오6시께 종로2가 소재 로얄제과점에서 그와
접촉, "전력(전과)가 있느냐" "아버지의 직업은 무엇이며 가족관계는 어떤가"
"애인이 있는가" "일본에 친척이 있는가" "해외여행경험이 있는가"라는 등의
질문을 받고 피의자의 개인신상에 관한 대답을 하다가 그로부터 평양축전에
참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를 받고 이를 응락한후 동년 6.3 22:00께 한양대
구내에서 이명훈과 접촉, 그로부터 평양축전에 참가할 의사가 있으면 여권
신청부터 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응락하여 같은달 5일 광화문소재 한보관광
(주)에 여권신청을 의뢰했다.
피의자는 또 88.12.28 "평양축전조선준비위원회" "조선학생위원회"가 평양
방송 및 한국적십자사를 통해
- 평양축전이 89.7.1부터 7.7까지 평양에서 열리게 되며 축전에 남녁청년학생
들이 자리를 같이하는 것은 너무나도 응담함.
- 우리는 최근 그대들이 평축에 참가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시대와
역사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확고한 의지의 발현이라고 인정하면서 초청형식을
빌어 입북을 지령한후 수차에 걸쳐 대남방송을 통해 선전선동하여 왔는바
이같은 지령은 북괴의 대남적화통일을 목표로한 통일전선책략의 일환임을
인식하였음에도 이명훈에게 "평양축전참가가 가능하고 통일의 시금석이
된다면 가겠다. 참가가능성이 있느냐"라고 대답하여 북괴의 지령에 따라 입북
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했다.
피의자는 또 이명훈으로부터
- 일단 해외로 출국하여 제3국을 통해 평양에 가야하며 이는 극비리에 해야
한다.
- 여권발급이 급선무이므로 내일 당장 여권신청을 하고 일단 일본으로 출국할
준비를 하라는등의 지시와함께 해외여행경비조로 80만원을 받은뒤 같은해
6.16 한보관광에서 피의자여권(재2352651호) 및 일본관광비자(15일)를 수령
하는 동시에 동경행 유나이티드항공기 탑승권신청을 의뢰하고 6.20 15:00께
연세대구내 무악극장 분장실에서 임종석, 전문환등과 회합.
- 피의자가 평양축전참가를 위한 입북이 실현되면 임종석, 전문환등은 기자
회견등 공개확인방법으로 피의자에 대한 대표성을 부여한다.
- 평축에 참가후 각종 행사참석은 피의자가 현지상황을 고려 결정하되 가장
중요한 것은 "7.7남북학생공동선언문" 채택이다.
- 이 공동선언문에서는 전대협이 이미 밝힌바 있는 "자주/평화/민족대단결
선언"를 공시입장으로 한다.
- 피의자는 평축참가후 북한의 반핵평화위원회가 주최하는 "한반도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제평화대행진" 참석후 판문점을 통해 귀환한다라는등의 토의,
결정했다.
피의자는 같은해 6.21 11:50 김포공항발 동경행 유나이티드항공 820편으로
출국, 같은날 13:40 일본 나리따공항에 도착한후 동경역전소재 하이마트호텔,
시바다이몽호텔등지를 전전, 투숙하면서 약정에 따라 국제전화로 이명훈과
연락을 유지해오던중 같은해 6.25 19:00께 이명훈으로부터
- 서독에 전화해 "미연"이라고 말하면 그쪽에서 알고 있을테니 일정을 협의한
뒤 연락하라. 그와 약정한 공항에 도착하면 장미꽃다발을 들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
- 여비를 보낼테니 일본내 송금받을 수 있는 주소를 정해 알려달라는 내용의
지시와 함께 서독 프랑크푸르크 거주 교포 이영준(46)의 전화번호(미상)를
받은 동시에 이영준에게 국제전화하여 "미연입니다. 27일에 가게될 것 같은데
프랑크푸르크로 가야 됩니까"라고 질문해 그로부터 서베를린으로 직접오라"는
말을 들은후 같은달 28일 국내에서 이명훈이 주선하여 DHL(항공속달)편으로
우송한 여행자수표 미화 3,750달러를 수수하고 같은달 28일 하오 이영준에게
국제전화하여 그에게 "미연인데 27일은 사정으로 인해 가지못했고 오늘 출발
합니다"라고 알리는 한편 피의자가 빨간 핸드백을 들고 밀집모자를 쓰고
간다고 인상착의를 설명해준 다음 같은 20:50 나리따공항에서 스위스항공편
으로 출발하고 스위스 쮜리히공항을 경우, 6.26 09:00 펜암항공편으로
서베를린에 도착, 마중나온 이영준의 영접을 받아 그의 안내로 그가 인솔하는
재독교포학생 3명과 함께 동베를린에서 북괴대사관요원으로부터 출국수속
협조를 받아 조선민항 881편으로 출발, 같은해 6월30일 13:30 평양순안비행장
에 도착, 북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전금철 및 조선학생위원회위원장
김창룡(40)등의 영접을 받고 도착성명을 통해 "형제들 굉장히 반갑습니다.
감격스럽습니다. 제가 지금 이곳에 도착한 것은 바로 저희 4,000만겨레의
염원인 조국통일을 위해서 입니다. 남한정권이 반통일 세력이며 진정통일을
원하는 자는 좌경용공세력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 남한의 현실입니다"라고
외쳐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했다.
피의자는 89.6.30 하오 평양시내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있은 기자회견 석상
에서
- 국가보안법에 대하여 제가 이곳 북한에 온 것은 적지로의 탈출, 여러분과
만나는 것은 이적단체와 만나는 것,노동신문을 보는 것은 이적표현물 탐독죄,
다시 남한으로 돌아가는 것은 잠입죄에 해당한다, 국가보안법은 투쟁으로
철폐해야 할 법이라 생각됩니다.
- 입북을 남한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평양축전은 사회주의 국가
들만의 정치적인 행사라는 식으로 보도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대협을
남한학생 대표로 보낼수 없다고 하는데 제가 알기에는 학생축전이 결코 사회
주의자들만의 정치적행사는 아니다. 그들(대한민국정부당국지칭)은 진짜
반통일세력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죠.
- 재일, 재미동포들에 대한 인사말에서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집권 노xx정권과 남한을 강제점거하고 있는 미국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했다.
- 피의자는 89.7.1 19:00 평양 "5.1경기장"에서 13차 평양집회개막식에
전대협대표로 입장하면서 주석단에 자리잡은 북괴 김일성, 김정일등에게 경례
하는등 평양 집회참가후 7.2 상오 김일성생가인 만경대 참관, 같은날 14:00
평양시내 김일성 경기장에서 김일성 및 조총련 중앙상임위원회 의장 한덕수
등과 같이 평양시 청년학생들이 출현하는 집단체조 "오늘의 조선"을 관람하고
같은날 저녁 평양시내 금수산의사당에서 제13차 평양집회 179개국 참가자
환영,김일성주최 연회에 참석하여 북괴군 인민무력부장 오진우, 조선평화통일
위원회 위원장 허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겸 조국평화통일
위원회 부위원장 정준기등과 접촉,북괴의 평양집회 활동에 적극 호응함으로써
그 구성원과 회합했다.
피의자는 또 89.7.7 상오 평양시내 모란봉청년야외극장에서 열린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조선인민과 청년학생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연대성
집회에 평양집회 조선준비위원회 부위원장겸 조선학생위원회 위원장 김창룡과
정준기 및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전금철등이 참석한 가운데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에 관한 북남청년학생 공동선언문"을 발표함에 있어
- 조국통일은 남과 북의 청년학생들의 삶과 투쟁의 최우선 목표이다. 이에
북과 남의 우리 청년학생들은 시대와 민족이 지닌 숭고한 사명과 임루를 깊이
자각하고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진행되고 있는 평양에서 하나의 조국,
하나의 민족을 위한 공동의 선언을 내외에 알린다.
- 우리는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을 제거하고 긴장상태를 완하는 것이 조국통일
의 전제라고 인정하면서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치하고 주한미군의 단계
적인 철수와 남북불가침선언을 채택하여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 투쟁한다.
(제3항)
- 우리는 남북교차승인과 유엔동시가입등 나라의 현분단상태를 영구화하려는
2개의 조선정책을 격렬히 반대, 배격한다.(제4항)
- 우리는 조국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북과 남사이의 당국대회와 함께 민간대회
들도 활발히 진행하며 당국이 통일논의의 창구를 특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제6항)는등으로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주한미군철수,
남북불가침선언채택, 남북교차승인과 유엔동시가입등 2개의 한국정책배격,
남북한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 개최등 북한의 위장평화통일정책에 동조
하는등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된다는 점을 알면서 그 구성원과 회합하는
동시에 주장에 동조함으로써 반국가단체인 북괴를 이롭게 했다.
피의자는 89.8.13 저녁 평양시 소재 고려호텔내 초대청으로 이용되고 있는
37층 피의자방으로 방문한 조석학생위원회 위원장 김창룡과 회합하고 그에게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겠다는 피의자가의 의사를 강조하는 한편 피의자에 대한
북괴측의 환송대회계획등을 설명받는 자리에서 그로부터 "남쪽의 전대협을
평가할때 학생들이 장하다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잘 투쟁하고 있다" "수경이가
돌아가 당할 일을 생각하니 몹씨 걱정되며 아무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등의 격려와 함께
- 전대협이 국제학생동맹에 가입하도록 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국제적 연대성
으로 투쟁할 수 있고 조선학생연맹과도 연대할 수 있다.
- 남북학생회담을 성사시킬 수 있도록 계속 투쟁하여 매년 1회 정기적으로
체육대회, 수학여행, 학생회담등의 교류를 갖도록 추진하라는등 지령을 받고
같은해 8.13 14:15 피의자와 동행키위해 별도 입북한 문규현신부(40)와 함께
김창룡 및 김일성 종합대학총장 박관오,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의장 여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의장 전금철, 조선반핵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이성호등의
환송을 받으며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하함으로써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과 회합, 지령을 받고 잠입한 자로써 구속치 않으면 도망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