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통화정책 수정바람직...밀턴 프리드먼교수 WSJ지 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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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화주의학파의 태두 밀턴 프리드먼교수는 경기조절을 위해 수시로 **
** 통화공급량을 변화시키는 케인지언정책을 맹렬히 비난해왔다. 그는 **
** 케인지언의 통화정책관이 인플레의 주범이라고 지적하고 통화증가 **
** 율을 경제성장률에 맞추어 일정하게 고정시킬 것을 주장한다. 월 **
** 스트리트저널지에 기고한 이글에서도 그는 역사적 통계자료를 통해 **
**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며 미국 행정부에 통화정책에 대한 발상의 **
** 전환의 촉구했다. **
인플레는 이제 막바지라고 결론 짓는 경제분석가들의 숫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물론 아직도 인플레를 우려하며 인플레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
들도 있다.
통화데이터로 미루어볼때 전자의 견해가 올바른 판단이다.
통화데이터는 향후 몇년간 인플레율이 빠른 속도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강력히 뒷받침하고 있다.
화폐수량항등식으로 표현된 것처럼 통화량(M)에 화폐의 유통속도(V)를 곱한
값과 물가(P)와 산출량(y)의 곱은 일치한다.(MV = Py)
화폐수량이론에서 V의 독립적인 변화는 다른 변수들에 비해 극히 미미
하다는게 경험적 결과이다.
따라서 물가(P)의 변화(인플레 혹은 디플레)는 통화량(M)을 산출량(y)으로
나눈 값이 좌우된다.
또 경험적으로 얻은 결과로서 통화공급량의 증감이 물가(P)에 영향을
미치는데는 약 2년의 시차가 생긴다.
과거 100년동안을 고찰해 보자.
GNP디플레이터(명목국민소득을 실질국민소득으로 나누어 얻어지는 값으로
물가의 전반적인 움직임을 반영한다)를 기준으로 한 인플레율은 지난 1888년
부터 1988년까지 연평균 2.65%였다.
같은 기간동안 2년전의 통화량(M) 증가율을 분자로 하고 산출량(y)을
분모로 한 값은 2.82%로 물가변동률과 통계적으로 큰 오차가 없었다.
**** 경기조절용 통화공급 증감이 인플레 주범 ****
최근 25년간의 분기별 자료를 가지고 앞서 한 방식으로 계산해 보면 물가와
통화량의 관계가 더 밀접해지는 것을 알수 있다.
1964년 1/4분기부터 금년 1/4분기까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인플레율(연율)
은 5.52%였고 통화량증가율 분자로 한 값은 5.48%였다.
이 계산에서 통화량의 측정기준으로 사용된 총통화(M2)는 지난 100여년동안
가장 신뢰할 수 있었고 지속적으로 존재해온 통화지표이다.
본인과 안나 슈바르츠교수는 이 총통화의 개념을 1963년의 공저 "통화역사"
와 82년의 "통화추세"에서 정의한 바 있다.
돈과 인플레의 관계는 단기일수록 느슨해진다.
그렇지만 도표에서 보는 것처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 도표는 본인이 수집한 2차대전이후의 신뢰할 수 있는데 데이터를 토대로
작성됐다.
데이터수집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매년 1/4분기의 전년동기대비
증가율을 표시했다.
2/4분기나 3/4분기를 기준으로 삼아도 이 도표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통화증가율에서 똑같이 3%포인트를 뺐다.
이 3%는 지난 100년과 최근 25년동안의 평균 산출량증가율(경제성장률)이다.
**** 경제성장률에 맞춰 고정시켜야 ****
3%포인트는 감해진 물가를 자극하는 유효 통화증가율(*M2)을 2년후의
ㅇ니플레율(GNP 디플레이터)과 비교하는 방법으로 도표를 작성했다.
도표 앞부분 몇년의 한국전쟁기간은 유효통화증가율과 인플레율이 크게
어긋나 통화증가율과 인플레사이의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한국전쟁기간의 경우에서 아주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정쟁으로 인한 인플레는 과거와 현재를 통해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생성원인이 아주 특별한 인플레였다.
이때의 인플레는 통화량의 변화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화폐의 유통속도(V)
가 급속도로 빨라졌기 때문에 야기된 것이다.
하나의 이론을 검증하는데 있어서 예외가 나타난 셈이다.
이 예외에 대한 설명은 간단명료하다.
한국정쟁은 물가를 두배로 뛰게 만들었던 2차대전이 끝난지 5년만에,
그리고 전시가격통제가 폐지된지 3년도 안돼 발발했다.
새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상품 사재기 현상을 빚었고 화폐의 유통속도(V)
가 급박해진 것이다.
한국전쟁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 가운데 인플레율이 유효통화증가율보다
높으면서 가장 큰 격차를 나타냈던 적은 81년으로 5.6%포인트였다.
반대로 최대격차를 보이면서 높았던 적은 78년으로 4%포인트였다.
현재 인플레율은 유효통화증가율보다 낮고 이는 지난 82년 4/4분기 이후
계속돼온 현상이다.
**** "제로 - 인플레"의 신통화정책 제시 ****
그러면 88년 1/4분기와 금년 1/4분기 통화증가율을 살펴본다.
각각의 통화증가율이 4.2%와 4.1%이므로 여기서 3%포인트(경제성장률)를
뺀 유효통화증가율은 1.2%와 1.1%이다.
이들 유효통화증가율이 2년후인 90년과 91년 1/4분기에 물가상승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고 인플레율을 계산해 보자.
88년 1/4분기의 유효통화증가율인 1.2%에 한국전쟁이후 인플레와 유효통화
증가율 사이의 최대편차인 5.6%와 그 반대인 4%를 가감하면 6.8%라는 수치가
계산돼 나온다.
따라서 90년 1/4분기의 인플레율은 마이너스 2.8-플러스 6.8% 범위중 어느
한 점에 위치할 것으로 추정된다.
금년 1/4분기의 인플레율(연율)은 4.9%였다.
역사가 부질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앞으로 인플레율은 하락할 확률이 매우
높은 것이다.
이상과 같은 분석은 미중앙은행인 FRB(연준리)가 이미 실시한 통화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를 예측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RB가 내놓은 통화정책들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본인은 이같은 분석을 포기한적도 있다.
본인은 제로-인플레 통화정책을 적극 지지한다.
비록 FRB가 통화량을 조정해 경기후퇴없이 인플레를 잡는데 성공할지
모르나 역사는 FRV가 오류를 자주 범했음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역사는 FRB를 없애고 프로그램을 바꿀수 없는 컴퓨터가 중앙은행의 통화량
조절기능을 대신해 제로-인플레통화정책을 확고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제시
하고 있을지 모른다.
** 통화공급량을 변화시키는 케인지언정책을 맹렬히 비난해왔다. 그는 **
** 케인지언의 통화정책관이 인플레의 주범이라고 지적하고 통화증가 **
** 율을 경제성장률에 맞추어 일정하게 고정시킬 것을 주장한다. 월 **
** 스트리트저널지에 기고한 이글에서도 그는 역사적 통계자료를 통해 **
**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며 미국 행정부에 통화정책에 대한 발상의 **
** 전환의 촉구했다. **
인플레는 이제 막바지라고 결론 짓는 경제분석가들의 숫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물론 아직도 인플레를 우려하며 인플레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
들도 있다.
통화데이터로 미루어볼때 전자의 견해가 올바른 판단이다.
통화데이터는 향후 몇년간 인플레율이 빠른 속도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강력히 뒷받침하고 있다.
화폐수량항등식으로 표현된 것처럼 통화량(M)에 화폐의 유통속도(V)를 곱한
값과 물가(P)와 산출량(y)의 곱은 일치한다.(MV = Py)
화폐수량이론에서 V의 독립적인 변화는 다른 변수들에 비해 극히 미미
하다는게 경험적 결과이다.
따라서 물가(P)의 변화(인플레 혹은 디플레)는 통화량(M)을 산출량(y)으로
나눈 값이 좌우된다.
또 경험적으로 얻은 결과로서 통화공급량의 증감이 물가(P)에 영향을
미치는데는 약 2년의 시차가 생긴다.
과거 100년동안을 고찰해 보자.
GNP디플레이터(명목국민소득을 실질국민소득으로 나누어 얻어지는 값으로
물가의 전반적인 움직임을 반영한다)를 기준으로 한 인플레율은 지난 1888년
부터 1988년까지 연평균 2.65%였다.
같은 기간동안 2년전의 통화량(M) 증가율을 분자로 하고 산출량(y)을
분모로 한 값은 2.82%로 물가변동률과 통계적으로 큰 오차가 없었다.
**** 경기조절용 통화공급 증감이 인플레 주범 ****
최근 25년간의 분기별 자료를 가지고 앞서 한 방식으로 계산해 보면 물가와
통화량의 관계가 더 밀접해지는 것을 알수 있다.
1964년 1/4분기부터 금년 1/4분기까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인플레율(연율)
은 5.52%였고 통화량증가율 분자로 한 값은 5.48%였다.
이 계산에서 통화량의 측정기준으로 사용된 총통화(M2)는 지난 100여년동안
가장 신뢰할 수 있었고 지속적으로 존재해온 통화지표이다.
본인과 안나 슈바르츠교수는 이 총통화의 개념을 1963년의 공저 "통화역사"
와 82년의 "통화추세"에서 정의한 바 있다.
돈과 인플레의 관계는 단기일수록 느슨해진다.
그렇지만 도표에서 보는 것처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 도표는 본인이 수집한 2차대전이후의 신뢰할 수 있는데 데이터를 토대로
작성됐다.
데이터수집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매년 1/4분기의 전년동기대비
증가율을 표시했다.
2/4분기나 3/4분기를 기준으로 삼아도 이 도표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통화증가율에서 똑같이 3%포인트를 뺐다.
이 3%는 지난 100년과 최근 25년동안의 평균 산출량증가율(경제성장률)이다.
**** 경제성장률에 맞춰 고정시켜야 ****
3%포인트는 감해진 물가를 자극하는 유효 통화증가율(*M2)을 2년후의
ㅇ니플레율(GNP 디플레이터)과 비교하는 방법으로 도표를 작성했다.
도표 앞부분 몇년의 한국전쟁기간은 유효통화증가율과 인플레율이 크게
어긋나 통화증가율과 인플레사이의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한국전쟁기간의 경우에서 아주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정쟁으로 인한 인플레는 과거와 현재를 통해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생성원인이 아주 특별한 인플레였다.
이때의 인플레는 통화량의 변화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화폐의 유통속도(V)
가 급속도로 빨라졌기 때문에 야기된 것이다.
하나의 이론을 검증하는데 있어서 예외가 나타난 셈이다.
이 예외에 대한 설명은 간단명료하다.
한국정쟁은 물가를 두배로 뛰게 만들었던 2차대전이 끝난지 5년만에,
그리고 전시가격통제가 폐지된지 3년도 안돼 발발했다.
새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상품 사재기 현상을 빚었고 화폐의 유통속도(V)
가 급박해진 것이다.
한국전쟁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 가운데 인플레율이 유효통화증가율보다
높으면서 가장 큰 격차를 나타냈던 적은 81년으로 5.6%포인트였다.
반대로 최대격차를 보이면서 높았던 적은 78년으로 4%포인트였다.
현재 인플레율은 유효통화증가율보다 낮고 이는 지난 82년 4/4분기 이후
계속돼온 현상이다.
**** "제로 - 인플레"의 신통화정책 제시 ****
그러면 88년 1/4분기와 금년 1/4분기 통화증가율을 살펴본다.
각각의 통화증가율이 4.2%와 4.1%이므로 여기서 3%포인트(경제성장률)를
뺀 유효통화증가율은 1.2%와 1.1%이다.
이들 유효통화증가율이 2년후인 90년과 91년 1/4분기에 물가상승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고 인플레율을 계산해 보자.
88년 1/4분기의 유효통화증가율인 1.2%에 한국전쟁이후 인플레와 유효통화
증가율 사이의 최대편차인 5.6%와 그 반대인 4%를 가감하면 6.8%라는 수치가
계산돼 나온다.
따라서 90년 1/4분기의 인플레율은 마이너스 2.8-플러스 6.8% 범위중 어느
한 점에 위치할 것으로 추정된다.
금년 1/4분기의 인플레율(연율)은 4.9%였다.
역사가 부질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앞으로 인플레율은 하락할 확률이 매우
높은 것이다.
이상과 같은 분석은 미중앙은행인 FRB(연준리)가 이미 실시한 통화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를 예측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RB가 내놓은 통화정책들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본인은 이같은 분석을 포기한적도 있다.
본인은 제로-인플레 통화정책을 적극 지지한다.
비록 FRB가 통화량을 조정해 경기후퇴없이 인플레를 잡는데 성공할지
모르나 역사는 FRV가 오류를 자주 범했음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역사는 FRB를 없애고 프로그램을 바꿀수 없는 컴퓨터가 중앙은행의 통화량
조절기능을 대신해 제로-인플레통화정책을 확고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제시
하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