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신문 사설 (16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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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뿌듯하던 88 성취감 그냥 스러지는가 ***
일본의 일부 호사가들은 지난해 서울올림픽이 끝나기도 전에 이후의 한국
의 경제 사회 정치 전망이 낙관 보다는 비관적이라는 예단을 내린적이 있다.
그때 그같은 입방아를 내심 불유쾌하게 여기면서도 혹시나 하는 두려움을
품었던 것이 사실이다.
내일로 88올림픽 개막 1주년을 맞으면서 아마도 그같은 일본인들의 예측을
완전히 틀린, 악의적인 시샘쯤으로 일소에 부칠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줄로 믿어진다.
장내의 스포츠 문화 예술잔치의 절도있고 알찬 진행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는 대행사를 전후한 4,000만 국민의 성숙한 자세가 일찍이
역사속에서 셩험하지 못했던 자부감을 만끽할 만큼 높은 수준이었다.
거리에 비하면 열강을 물리친 종합순위 4위의 스포츠 실력, 온갖 계측을
컴퓨터로 차질없이 해낸 과학기술의 기량은 오히려 차치해야 할 정도였다.
그만큼 유형보다도 무형적 성취, 정신적 포만감이 우리를 한없이 만족시켜
주었던 것이다.
어찌 우리 국민뿐인가.
직접 참가하고 구경을 왔던 세계인들, 현장중계 TV로 지켜보던 수십억
인류가 전쟁의 뉴스원, 중국 일본의 아류, 전후 미국의 영향권 아래있는 악소
열등 종족즘으로 부각돼 온 코리아의 연상을 깨버리고 이나라를 재인식하는
사상초유의 기회가 되었다.
먼 발치에 서있던 제 3세계권에는 외경의 대상으로, 적성국 내지는 준적성
국으로서 의심스레 흘겨보아도던 공산권은 생동하는 자주국민, 가친의
문화민족, 거래를 하면 실보다 득이 있을 경제단위로, 그야말로 180도의
시각전환이 뒤따랐던게 단기간안의 엄청난 변화였다.
....... 중 략 .......
그 결과는 이미 여러 방면에서 나기 시작했다.
서울 한복판 강연회에서, 방송화면에서 중국인 동구인은 물론 크렘린의
골수 공산주의자들이 이렇게도 공공연하고 빈번하게 출현할줄을 누가 짐작
인들 했었으며 더구나 칭찬에 인색하지 않고 교류를 자청하리라고 누가
미처 상상이나 했었는가.
그러나 이러한 세계속의 도약이 정말 당영시/상식화 될수 있으며 그래도
좋은가를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할 차례다.
그렇지 않다.
만일 세계라는 거울속에 비춰진 우리의 환상에 스스로 현혹되어 그것이
진정 어떤 우리였던가를 성찰하지 않으면 대외교류의 증폭된 통로는 다시
어느새 좁혀지고 아예 폐쇄될지도 모를 불완전한 것이 된다.
올림픽기간에 보여주었던 우리의 모습이 애써 꾸며진 허상이 아니라 실상
으로, 한때의 차력같은 기적으로가 아니라 잠재역량으로 만들어낸 실력이
되어야만 세계의 새로운 대한관은 지속되고 개선되어 나갈수 있다.
그러면 이같은 대외적 반향의 지속화와 그에 대한 성공적 대응은 근본에
있어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대내적인 자기성숙과 자기완성으로의 마음가짐이다.
올림픽뒤에 불어닥쳤던 국내정치적 사회적 소용돌이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렇더라도 축전이 끝나고 불과 석달 반년 1년안에 그때의 감동을 깡그
리 잊어버리는 국민성이라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일의 경중을 교량할줄 모르는 미숙의 소치에 다름이 없다.
전무후무할 화합의 기운을 시국문제 논쟁에 모두 흩날리고 마는 무모성
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백성을 이끈다고 자부하는 위정자들, 사회지도츠의 몰지각이
우선 나무람을 받아야 한다.
서로가 자신과 일족과 집단의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내살은 조금도 떼어
내지 못하겠다는 아집에 사로잡혀 그 귀중한 88자산마저 송두리째 낭비
하려는 불장난들을 그치려하지 않고 있다.
그렇더라도 국민만이라도 질서을 지키고 성숙성을 지탱하여 지도층의 등을
밀어줘야 겠는데 사실상 그건 어려운 일이다.
이제라도 크게 보고 소 대실하지 않는 지혜를 터득하자.
일본의 일부 호사가들은 지난해 서울올림픽이 끝나기도 전에 이후의 한국
의 경제 사회 정치 전망이 낙관 보다는 비관적이라는 예단을 내린적이 있다.
그때 그같은 입방아를 내심 불유쾌하게 여기면서도 혹시나 하는 두려움을
품었던 것이 사실이다.
내일로 88올림픽 개막 1주년을 맞으면서 아마도 그같은 일본인들의 예측을
완전히 틀린, 악의적인 시샘쯤으로 일소에 부칠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줄로 믿어진다.
장내의 스포츠 문화 예술잔치의 절도있고 알찬 진행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는 대행사를 전후한 4,000만 국민의 성숙한 자세가 일찍이
역사속에서 셩험하지 못했던 자부감을 만끽할 만큼 높은 수준이었다.
거리에 비하면 열강을 물리친 종합순위 4위의 스포츠 실력, 온갖 계측을
컴퓨터로 차질없이 해낸 과학기술의 기량은 오히려 차치해야 할 정도였다.
그만큼 유형보다도 무형적 성취, 정신적 포만감이 우리를 한없이 만족시켜
주었던 것이다.
어찌 우리 국민뿐인가.
직접 참가하고 구경을 왔던 세계인들, 현장중계 TV로 지켜보던 수십억
인류가 전쟁의 뉴스원, 중국 일본의 아류, 전후 미국의 영향권 아래있는 악소
열등 종족즘으로 부각돼 온 코리아의 연상을 깨버리고 이나라를 재인식하는
사상초유의 기회가 되었다.
먼 발치에 서있던 제 3세계권에는 외경의 대상으로, 적성국 내지는 준적성
국으로서 의심스레 흘겨보아도던 공산권은 생동하는 자주국민, 가친의
문화민족, 거래를 하면 실보다 득이 있을 경제단위로, 그야말로 180도의
시각전환이 뒤따랐던게 단기간안의 엄청난 변화였다.
....... 중 략 .......
그 결과는 이미 여러 방면에서 나기 시작했다.
서울 한복판 강연회에서, 방송화면에서 중국인 동구인은 물론 크렘린의
골수 공산주의자들이 이렇게도 공공연하고 빈번하게 출현할줄을 누가 짐작
인들 했었으며 더구나 칭찬에 인색하지 않고 교류를 자청하리라고 누가
미처 상상이나 했었는가.
그러나 이러한 세계속의 도약이 정말 당영시/상식화 될수 있으며 그래도
좋은가를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할 차례다.
그렇지 않다.
만일 세계라는 거울속에 비춰진 우리의 환상에 스스로 현혹되어 그것이
진정 어떤 우리였던가를 성찰하지 않으면 대외교류의 증폭된 통로는 다시
어느새 좁혀지고 아예 폐쇄될지도 모를 불완전한 것이 된다.
올림픽기간에 보여주었던 우리의 모습이 애써 꾸며진 허상이 아니라 실상
으로, 한때의 차력같은 기적으로가 아니라 잠재역량으로 만들어낸 실력이
되어야만 세계의 새로운 대한관은 지속되고 개선되어 나갈수 있다.
그러면 이같은 대외적 반향의 지속화와 그에 대한 성공적 대응은 근본에
있어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대내적인 자기성숙과 자기완성으로의 마음가짐이다.
올림픽뒤에 불어닥쳤던 국내정치적 사회적 소용돌이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렇더라도 축전이 끝나고 불과 석달 반년 1년안에 그때의 감동을 깡그
리 잊어버리는 국민성이라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일의 경중을 교량할줄 모르는 미숙의 소치에 다름이 없다.
전무후무할 화합의 기운을 시국문제 논쟁에 모두 흩날리고 마는 무모성
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백성을 이끈다고 자부하는 위정자들, 사회지도츠의 몰지각이
우선 나무람을 받아야 한다.
서로가 자신과 일족과 집단의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내살은 조금도 떼어
내지 못하겠다는 아집에 사로잡혀 그 귀중한 88자산마저 송두리째 낭비
하려는 불장난들을 그치려하지 않고 있다.
그렇더라도 국민만이라도 질서을 지키고 성숙성을 지탱하여 지도층의 등을
밀어줘야 겠는데 사실상 그건 어려운 일이다.
이제라도 크게 보고 소 대실하지 않는 지혜를 터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