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소평 사망후 대정섭 ***
중국 공산정권은 10월1일로 건국 40주년을 맞는다.
그러나 건국기념일을 건국이래 처음으로 계엄령이 내려져 신호 경계령이
발동된 가운데 맞게돼 경축 분위기보다는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고 중국계 신문 신면보마저도 29일 보도했다.
<>계엄속에 맞는 건국기념일 - 중국 공산정권은 1949면 10월1일
장계석 국민당 정부군을 대륙에서 패퇴시키고 정권을 수립한지 40년을
맞는 동안 숱한 정치적 파동과 소용돌이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그러나 무장 군일들이 경축행사가 펼쳐지는 천안문 광장 요소요소에
배치돼 삼엄한 경계를 펴는 가운데 개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의 현 정치 상황이 그만큼 불안하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또한 그 장래도 암울하고 예측 불허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6.4무력진압 후유증 심각-4개월 가까이 접어든 지난 6월4일의
천안문 광장 농성/시위 대학생들에 대한 무역에의한 유별진압의
상흔이 아직 아물지 않고 있다.
6.4사태로 실권을 더욱 강화한 장상곤 국가주석(대통령)이나
이붕총리 등 보수 강경파들은 소수이기는 하지만 반체제 정부
전복 음모자들이 무기를 소지, 건국 기념일 행사를 이용하여 테러/
파괴 활동을 획책할 우려가 적지 않다고 주장하며 계엄령 유지의
불가피성을 역설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지난 40년간의 공산 통치로 전국을 통치하고
핵무기까지 보유하는 등 군사대국의 하나로 부상했지만 자체내에
공산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반체제분자들의 세력도 무시못할
만큼 도사리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라고 할수 있다.
실각한 조자양 전 당총서기 후임으로 일약 중국의 차기
대권주자로 간택된 강택민 신임당총서기(61)는 지난 26일
이붕총리, 조의림 부총리를 포함한 5명의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들과 함께 가진 공동기자 회견에서 6.4 천안문 유혈사태는
비국이 아니며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천명했다.
즉 중국내의 부르주아 자산계급들이 외부의 사주를 받아 공산당의
영도와 공산주의 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한 반혁명 폭동을 회책했기
때문에 무력 진압이 당연했다는 주장이다.
이는 조자양 당총서기를 내쫓고 실권을 장악한 장상근, 이붕 등
보수 강경파들의 자기 합리화 주장이다.
<>공산당 신회상실 - 지난 4,5월 북경 대학생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가 수많은 북경 시민들로부터 열렬한 성원을 받고 40여일 동안
천안문 광장을 수없이 메운 지지데모에 대해서도 중국의 영도층들은
정부와 체제 전복으로 몰아 붙이고 있다.
또한 이민의 군대로 불려온 인민해방군을 동원, 천안문 광장에서
맨손으로 농성하던 학생/시민들을 탱크와 기관총으로 짓밟고
죽여 군은 물론 공산당에 대한 일반의 신뢰도까지 깡그리 뭉개버렸다.
중국 당국은 심지어 관영 신화통신 기자나 인민일보를 비롯한
관영 언론매체의 기자들까지도 언론자유와 정치체제 개혁을 요구하며
대학생 지지 데모를 잇따라 벌였는데도 이를 무시, 체제전복으로만
몰아세웠다.
한마디로 공산주의 특히 보수 강경 노선의 정통 공산주의 신봉자들로서는
대중들의 민주화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곧 체제전복으로 해석, 위협을
느낀 때문이었다.
<>보수/개혁파간 권력암투 - 6.4 천안부 유혈사태는 회피할 수
있었으며 처음에는 단순한 계기로 시작된 것이 보수/개혁파들간의
권력 암투로 커다란 비극이 됐다.
북경의 대학생들은 지난 4월15일 호유방 전 당총서기가 급서하자
호유방이 지난 86년 겨울 대학생 데모에 책임을 지고 당총서직을
사퇴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조자양 당총서기, 이붕 총리를 포함한
당중앙정치국 국원 18명 전원의 사퇴를 요구했었다.
이들 대학생들은 이와 함께 물가고, 부정부패를 규탄하며 지도자들의
수입 명세 발표와 언론자유, 가두데모 허용 등 흔히 젊은 대학생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부르짖는 민주화 요구 데모를 벌였었다.
이런 과정에 대학생들의 데모에 대한 대책을 놓고 강경/온건세력간에
충돌, 중국 개방경제 실천의 기수인 조자양의 온건파가 세력 열세로
거세됨으로써 중국의 영도층은 보수 강경 세력이 완전 장악하게 됐다.
<> 등소평 사후 큰 혼란 우려 - 조자양의 실각은 그의 정치적 대부인
등소평마저도 그를 외면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등소평은 조자양의 개방/개혁 속도에 다소 불만을 느껴온데다가
북경 대학생 데모를 이용, 자신에게 은퇴 압력을 강요해온 조자양을
괘씸하게 생각하여 등을 돌렸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자양으로서는 항상 은퇴를 외치면서도 중국의 실권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등소평은 물론 등소평을 둘러싸고 있는 80대 이상
보수 원로들의 견제를 못마땅하게 여겨온 것 같다.
하지만 양상곤 국가주석(83)이나 이선념 정치협상 주임(80),
옥진 국가부주석(81)등 보수 원로들은 항상 조자양의 급진 개방
정책에 제동을 걸어왔으며 특히 북경 대학생 시위 사건 처리에
현저한 견해 차이를 보여 암투끝에 이붕총리와 합세, 조자양을
축출시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보수 강경파들이 권력 장악 명분으로 이용한 6.4 천안문
무력 진압 사태는 커다란 희생과 함께 외부로부터 엄청난 반발과
압력을 불러 일으켰다.
즉 미국, 일본, 유럽을 위시한 거의 모든 자유국가들이 경제제재를
가하는 바람에 중국은 지난 10년동안 추진해온 개방/개혁 정책들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놓여 있다.
외국의 차관이나 무역없이는 개방 경제 체제로 전환되고 있는 중국의
경제는 완전 정지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서방 국가들로서는 최고 실권자 등소평이 연로하고 그
후계자가 불확실한 현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차관 공여등
경제 교류를 꺼리고 있어 경제적인 면에서도 타격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중국은 올해 85세의 등소평이 사망하면 후계자 선정을 놓고 일대
정치적 각변을 겪을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공산주의 국가등 일인 독재 국가에서는 마찬가지 현상이지만 최고
실권자가 부상되어 있지 않은 마당에 심각한 권력 투쟁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권력 투쟁 과정에 보수 원로들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 불을 보듯 환한데 이럴 경우 중국은 10년 개방 개혁 정책을
팽개치고 50년대의 스탈린 통치 체제로 복귀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 50년대 통제 경제로 복귀 우려 - 중국의 많은 보수 원로들은
대학생들의 민주화 시위나 각종 사회악등이 개방 경제 체제에
큰 잘못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이들은 조자양의 시장 경제 체제 도입을 반대하며 항시
제동을 걸었다.
조자양의 실각후 중앙 통제 권한을 강화하거나 지방 정부를 감시/
감독할 지방국을 중앙정부와 당에 신설하려는 것도 모두 이같은
맥락들과 연결되는 일련의 조치들이다.
하지만 소련을 비롯한 폴란드.헝가리 등 동구 공산 국가들이
다당제를 허용하고 노동조합을 인가하는 등 개방화의 길을 걷고
있는데 반해 중국이 정통 공산주의의 이념체제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공산 정권의 수명을 재촉하는 반시대적 편승인
것 같다.
한마디로 정권 수립 40주년을 맞는 중국은 지나온 투쟁과 격동의
역정보다 앞으로 더욱 큰 시련과 혼란을 만날것 같다.
특히 6/4 사태를 계기로 해외에 조직된 "민주중국전선"등 반체제
단체들이 부강한 대만의 지원을 받아 벌일 파괴 활동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그 장래가 어둡게 전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