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산업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대림산업은 10일 창립 50주년을 맞아 올림픽펜싱경기장에서 12개 계열사
직원을 비롯한 협력업체임직원, 해외근로자 가족, 퇴직사원등 5,000여명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장기자랑 등 자축기념식을 가진다.
일제시대 건자재판매업으로 시작, 지금은 종합건설 및 석유화학, 증권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야에 걸쳐 12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연간 매출액
1조 5,000억원으로 성장한 대림의 반세기 발자취를 간추려 살펴본다.
*** 1939년 10월 인천시 부평동의 부림상회로 첫출발 ***
창업자인 이재준회장이 설립한 이 상회는 당시 목재 철물 등 건자재를
판매하는 건자재상이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병참기지화하면서 목재수요가 급증하자 이회장은
제재업에 눈을 돌려 원시림의 개발에 나서 당시 경인지방은 물론 전국에서도
제 1 급으로 꼽히는 목재회사로 부상했다.
1943년에는 토건업에 뛰어들어 주택신축등 소규모공사를 주로 하다 6.25를
전후해서는 파괴된 수리시설, 교통시설, 학교, 병원, 관공서 등 공공건물에
대한 복구와 재건사업에 참여, 본격적인 건설업의 기반을 다져나갔다.
*** 60, 70 년대 맞아 대규모 건설사업으로 괄목성장 ***
고속도로, 항만, 발전소 등 사회간접자본시설의 건설과 울산, 포항, 여천
등지의 석유화학, 비료공장, 종합제철 등 대규모건설 사업을 도맡아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실력을 보여준다.
대림 산업이 플랜트공업에 강하다는 명성을 얻은 것도 바로 이때이다.
국내에서의 성장과 함께 해외로도 눈을 돌려 60년대초에 괌도의 유조탱크
설치공사 등을 맡아 해외건설수출의 첫장을 열기도 했다.
이어 부르나이, 태국, 말레이지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의 건설시장으로
영역을 넓혀나가 건설업 랭킹 1위를 지켜나갔다.
70년대 들어서는 해외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해 중동진출을 시도했으며
74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이란, 이라크
등 중동과 남아연방, 이집트 등 아프리카지역에서도 각종 건설공사를 수주,
성공적인 시공을 함으로써 국제적인 종합건설회사로 발돋움했다.
*** 서울증권등 타업종에도 진출, 사세확장 ***
대림산업은 사세가 확대됨에 따라 타업종에도 진출, 서울증권 (54년),
대림콩크리트공업 (65년), 대림흥업 (69년), 대림요업 (71년),
대림엔지니어링 (74)등 주로 건설업과 관련된 사업을 계열화 했다.
70년대말부터는 경영다각화를 모색, 78년에는 이륜차생산업체인 대림자동차
공업을 설립하고 79년에는 석유화학분야의 호남에틸렌을 인수, 대기업
집단으로 변신했다.
80년대들어서는 86년에 (주) 삼호를 비롯한 오라관공, 삼호유통을 인수했고
87년에는 고려개발을 또 인수했다.
10일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대림산업은 현재 12개의 계열기업과
대림아메리카, 사우디아라비아의 레덱대림 등 2개의 해외현지법인을 두고
있다.
해외 지점은 15 개.
*** 지난해 그룹전체의 매출액 1 조 5,000 억원 ***
지난해 그룹전체의 매출액은 1조 5,000억원이 이르렀으며 모기업인
대림산업은 자본금 975억원에 직원수는 4,000여명, 건설현장은 국내외에
80여개나 된다.
특히 전남여천에는 연산 60만톤의 에틸렌을 생산하는 대형공장을 갖추고
산업및 생활필수품의 기초소재가 되는 프로필렌, 폴리에틸렌, 스티렌모노머
등 석유화학제품을 연 163만톤씩 생산, 국내 석유화학제품의 안정수급에
기여하고 있다.
대림산업은 그동안 양적인 팽창보다는 질을 중요시하며 조용히 일하는
가운데 견실하게 전진해 왔으며 창립 50주년을 맞아서는 협동과 전진이라는
표어 아래 100년사를 향해 재도약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