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 휴전후의 특별배려까지 요청 ***
일본은 한국전쟁 휴전이 가까워지자 협정성립여부 보다는 전쟁으로 인한
특수가 없어질 것을 먼저 우려, 미국에 휴전후에도 적절한 배려를 해주도록
부탁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15일 공개된 일본 외무성이 외교문서에 따르면 일본정부는 휴전협정 전후
각국의 동향과 협정체결 과정등에 관해 해외공관과 주고 받은 전문에서 "한국
전쟁으로 인한 특수가 없어지면 일본경제는 어떻게 되느냐"를 가장 걱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정부는 구체적으로 포로교환문제를 둘러싸고 난관에 봉착했던 휴전협상
이 53년3월 주은래 중국총리가 유엔측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성명을 발표함
으로서 급진전될 기미를 보이자 곧장 미국에 "휴전후에도 (일본의 경제를)
배려해 주도록" 요청했다.
이에 대해 존슨 당시 미국무차관대리는 "일본이 받을 경제적 타격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일본이 벌어들이는 달러에 큰 변화가 없도록 배려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당시 주미대사는 보고하고 있어 미국이 휴전후 한국부흥계획
참여등 모종의 약속을 했던 것으로 보이나 구체적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 개전 첫해 계약고 3억3,000만달러 ***
일본은 한국전쟁 개전 첫 한해동안에만도 3억2,900만달러의 계약고를
올렸는데 이는 당시 일본 상품수출총액의 24%, 국민총생산(GNP)의 3%에 해당
되며 도산일보직전이던 도요타자동차가 전쟁발발과 함께 미군 트럭 1,000대
를 주문받아 되살아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 당시 이승만대통령은 "유엔이 작성한 한국부흥계획이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주요물자를 일본에서 조달하게 돼 결국 일본만을 이롭게 할 것"이라는
이유로 맹렬히 반발했으며 이 때문에 일본은 총 19억달러에 달하는 유엔
한국재건계획에 출자할 예정이던 4만달러의 참여를 미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는 그러나 해상보안청이 미국의 요청에 따라 함정
20척을 파견, 원산앞바다에서 기뢰제거 작업을 벌이고 한국에 파견된 일본인
노동자들이 전사자 시체운반, 미군 숙소건설등 사실상 공병부대의 역할을
하는등 한국전쟁에 "관여"한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유엔군은 인천상륙에 성공한후 뒤이어 원산 상륙
작전을 구상, 북한이 부설한 기뢰를 제거하기 위해 일본 해상보안청에 소해정
파견을 요청했으며 당시 요시다총리는 "극비"를 조건으로 파견을 승인, 2개월
여에 걸쳐 연인원 1,200여명이 파견돼 기뢰제거작업을 벌였으며 이중 2척이
기뢰에 접촉, 침몰하는 바람에 1명이 죽고 18명이 부상했다.
일본의 한국전 관여는 당시 북한과 중국이 포로교환에 따라 석방한 포로속
에 일본인이 섞여 있었던데서도 나타나고 있으나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는
이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