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대통령, 87년 6월항쟁당시 군투입명령..월간조선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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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전대통령은 지난 87년 4월항쟁이 절정에 달한 6월19일 위수령을
발동, 육군 2개사단과 해병 1개사단을 시위가 격렬했던 부산지역에 투입하려
했었다고 월간 조선이 12월호에서 보도.
*** 부산지역에 위수령발동 지시 ***
전전대통령은 서울 부산 광주 대전등 대도시에서의 시위가 철야로 이어지고
경찰보유 최루탄이 1만7,400여발로 만이틀 사용분에 부과하고, 특히 부산
에서는 6월18일밤부터 19일새벽까지 시위대가 KBS와 시청점거를 기도하는가
하면 부산시로부터 "경찰력에 한계가왔다"는 보고를 받고 새벽5시 군수뇌부에
"군동원을 통한 비상조치 준비를 갖추라"고 지시했다는 것.
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박희도당시 육군참모총장주재로 열린 참모회의
에서 부산의 53사단과 3군산하 26예비사단의 1개연대 그리고 동해안주둔 해병
1개사단에 출동명령이 내려졌고 현지에서 가장 먼거리(서울근교)에 있는
26사단병력은 이 명령에 따라 의정부역에 집결하는등 만반의 준비가 갖춰져
있었다고.
*** 10여시간만에 돌연 군투입 명령 취소 ***
그러나 전전대통령은 부산지역 위수령이 기정사실로 알려지고 일부
군병력이 이동을 하고 있다는 제보가 언론기관에 들어오기 시작한 19일하오
4시30분께 느닷없이 이기배국방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군출동을 취소시켰는데
전전대통령의 군투입계획을 취소케하는데에는 경찰력만으로 시위진입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권복경당시 치안본부장과 고명승당시 보안사령관등의
보고가 상당한 작용을 한 것으로 이 잡지는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보도.
또 노태우당시 민정당 대표위원의 군을 동원할때가 아니라는 판단과 진언,
그리고 이한기 당시 총리, 정호용전국방장관등의 직간접적인 만류가 군투입을
막는데 기여한 반면 당시 내무장관이던 고건현서울시장등 민간출신들이
오히려 군동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주장.
*** 민간출신들이 오히려 군대동원 주장 ***
그러나 당시 군투입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던 미국측은 별 기여를 하지
못했고 19일 당일날 전대통령을 면담한 제임스 릴리 주한미대사는 레이건
미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으나 친서에는 군동원과 관련한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고 당시 청와대에 근무한 소식통이 전언.
한편 6월항쟁과 전전대통령의 군투입결정과 취소가 결국 노대통령의 6.29
선언으로 이어졌으며, 이과정에서 전전대통령이 노당시 대표위원에게
직선제를 받도록 권유했고 노대표가 군투입취소결정이 내려진 19일밤 청와대
단독면담에서 이를 수용했다고 이 잡지는 첨가.
발동, 육군 2개사단과 해병 1개사단을 시위가 격렬했던 부산지역에 투입하려
했었다고 월간 조선이 12월호에서 보도.
*** 부산지역에 위수령발동 지시 ***
전전대통령은 서울 부산 광주 대전등 대도시에서의 시위가 철야로 이어지고
경찰보유 최루탄이 1만7,400여발로 만이틀 사용분에 부과하고, 특히 부산
에서는 6월18일밤부터 19일새벽까지 시위대가 KBS와 시청점거를 기도하는가
하면 부산시로부터 "경찰력에 한계가왔다"는 보고를 받고 새벽5시 군수뇌부에
"군동원을 통한 비상조치 준비를 갖추라"고 지시했다는 것.
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박희도당시 육군참모총장주재로 열린 참모회의
에서 부산의 53사단과 3군산하 26예비사단의 1개연대 그리고 동해안주둔 해병
1개사단에 출동명령이 내려졌고 현지에서 가장 먼거리(서울근교)에 있는
26사단병력은 이 명령에 따라 의정부역에 집결하는등 만반의 준비가 갖춰져
있었다고.
*** 10여시간만에 돌연 군투입 명령 취소 ***
그러나 전전대통령은 부산지역 위수령이 기정사실로 알려지고 일부
군병력이 이동을 하고 있다는 제보가 언론기관에 들어오기 시작한 19일하오
4시30분께 느닷없이 이기배국방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군출동을 취소시켰는데
전전대통령의 군투입계획을 취소케하는데에는 경찰력만으로 시위진입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권복경당시 치안본부장과 고명승당시 보안사령관등의
보고가 상당한 작용을 한 것으로 이 잡지는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보도.
또 노태우당시 민정당 대표위원의 군을 동원할때가 아니라는 판단과 진언,
그리고 이한기 당시 총리, 정호용전국방장관등의 직간접적인 만류가 군투입을
막는데 기여한 반면 당시 내무장관이던 고건현서울시장등 민간출신들이
오히려 군동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주장.
*** 민간출신들이 오히려 군대동원 주장 ***
그러나 당시 군투입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던 미국측은 별 기여를 하지
못했고 19일 당일날 전대통령을 면담한 제임스 릴리 주한미대사는 레이건
미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으나 친서에는 군동원과 관련한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고 당시 청와대에 근무한 소식통이 전언.
한편 6월항쟁과 전전대통령의 군투입결정과 취소가 결국 노대통령의 6.29
선언으로 이어졌으며, 이과정에서 전전대통령이 노당시 대표위원에게
직선제를 받도록 권유했고 노대표가 군투입취소결정이 내려진 19일밤 청와대
단독면담에서 이를 수용했다고 이 잡지는 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