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셰스쿠 루마니아정권이 민중봉기로 붕괴하는 가운데 격동의 89년
세계는 저물어 간다.
89년은 동구대변혁의 한해였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방아쇠가 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소련을 포함
한 이 동구대변혁은 우선 경제면에서 세계적인 기술혁신과 정보혁명의 급속
한 진전을 관료적인 중앙통제경제시스템이 대응할수 없었던 결과이다.
세계적인 사회주의체제의 이같은 쇠퇴로 더이상 사회변혁은 없다는 의미
에서 "역사는 끝났다"는 성급한 진단조차 나오고 있지만 89년 동구의 대변혁
이 전후시대, 미소의 얄타체제를 끝막음하는 유럽의 재편, 새로운 유럽의
일부임에는 틀림이 없다.
유럽의 새로운 질서가 미소에 의해 규정되어 온 구질서와 구체적으로 얼마
나 다를수 있는가를 지금 속단하기는 이르다.
양독의 통일문제가 진행되고 나토나 바르샤바조약기구가 정치화하며 유럽
주둔 미소군이 철수하겠지만 이들 "현실정치"가 1차적으로 새질서의 속도와
내용을 규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작용에 따른 반작용은 있을수 있더라도 90년대의 유럽질서가
새로운 세계체제의 일부로 자리를 굳혀갈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새체제"는 냉전체제와는 본질에서 다른 몇가지 특징을 중심으로
발전해 갈 것이다.
그러나 특히 유럽에서 EC라는 초국가의 등장이 92년부터 실험되고 한편에선
미소의 주둔군철수에서 비롯해 군사적대의 해소가 군비축소를 가져오면서
국가에서 군사라는 부문과 영토라는 개념이 달라지면 국가라는 개념도 달라
질수 밖에 없을 것이다.
파나마사태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강대국 권력정치가 아직은 현실이지만
이같은 변화가 "현실"과 차종하면서 전개되는 것이 역사다.
유럽의 발빠른, 현저한 변화에 비해 아시아의 현실은 외견상 냉엄하다.
특히 변화를 선도하고 있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소련과 경제초강대국으로
성장해서 군사 정치중심의 미소세계체제의 한계를 드러내게 한 일본은 기본적
인 양국관계조차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굵직한 채널들이 활발한데 비해서 한반도의 새로운 위상정립도 아직은
구상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특히 새로운 일소관계의 설정이 계기로 되면서 미국과 중국, 소련과
일본이 연출하는 "아시아의 변화"도 90년대에 들면서 본격화할 조짐이다.
무엇보다 페레스트로이카의 국내적 성패를 시베리아에 걸고 있는 소련의
집요한 접근을 무시했던 일본의 태도가 동구사태이후 현저하게 달라지고
있다.
북방4개도서의 반환을 일소협력의 전제로 고정시켜 놓은 입장에서 소련과
끈질기게 대화해야 한다는 적극적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동서관계 진전에서 일소관계의 개선이 "극히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일소접근은 또 시베리아개발이라는 경제문제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이다.
북방정책에서 새로운 경제적 활로를 구할수 있느냐가 우리경제의 확대
재생산의 관건이라고 볼때 이 또한 우리 문제이다.
크게 보면 앞으로 90년대 국제정치의 주요흐름은 미/일/유럽의 경제적
이니셔티브와 시장으로서의 소련/동구/중공의 대응으로 압축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새로운 세계경제의 주요흐름에 우리
경제를 밀착시키는 일이다.
요컨대 중동진출로 세계적 오일 머니의 환류에 끼여들었듯이, 또 미일무역
구조속에 포괄되어 교역규모를 크게 늘렸듯이 적극적인 확대균형은 그 자체
의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경제로서도 유일한 선택일수밖에 없다.
이같은 북방정책의 강화는 한편 국내정치적 동기 때문에 협상테크닉으로
우위를 점하려는 북한에 대한 올바른 대응인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