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대통령이 5공청산 마무리를 위한 국회증언을 위해 백담사를 떠난
31일 새벽은 유난히 한기를 느끼게 했다.
백담사 경내와 주변을 에워싼 솔숲이 그동안 내린 눈으로 하얗게 뒤덮혀
있는 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전씨 일행을 태운 차는 한 겨울의 차가운 새벽 밤
공기를 가르며 20여대의 취재차량을 뒤로한채 서울 나들이 길에 나섰다.
지난 88년11월23일 연희동 사저를 등뒤로 오열하는 이순자씨와 함께 백담사
를 찾았던 전씨가 칩거생활 403일째인 1년38일만의 첫 서울 외출이지만 또
다시 돌아와 기약없는 생활을 해야 하는 약속된 외박인 셈이다.
전씨 내외의 백담사 생활은 그동안 스님들과 경비원, 인근 주민들의 이야기
로 단편적으로 전해졌으나 근거없는 소문도 많았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백담사 무상출입이 가능한 주민들은 14-15명에 달하는데 이들은 사찰 소유
의 밭일을 도와주기 위한 청장년 10여명과 백담사 부엌일을 거들어 주기 위한
아낙네들로 전씨 내외가 어떤 식사를 즐기고 몸보신을 하는지 소상히 알고
있지만 경비원들의 입조심 경고 때문인지 자세한 내용을 말하기를 꺼린다.
그러나 굳이 물으면 "밥은 콩에 보리를 섞은 잡곡밥을 즐기고 상오4시에
울리는 새벽 예불이 끝나면 아침식사는 야채를 곁들인 빵 한조각과 우유 한
컵으로 때운다"면서 "그동안 신문들이 매일 녹차를 들고 끼니마다 밥을 먹는
것처럼 보도했으나 이는 모두 사실과 다르다"고 귀띔해준다.
또 아낙네들은 "점심은 보통 신도들과 어울려 따로 차린 밥상에 앉아
들지만 신도들과 똑같은 반찬을 들고 이 지방 특산물인 치커리차를 즐겨
마신다"고 말한다.
전씨 내외는 토종꿀을 매우 좋아해 몸보신용으로 즐겨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찰 소유 꿀통 40여개가 있으나 올해는 꿀 흉년이 들어 됫병
으로 7병밖에 따내지 못했는데 이씨가 모두 방안에 들여놓고 복용중 이라는
것.
용대리 주민들이 그동안 전씨 체류로 민박수입이 줄어들고 여름철 버섯
따기등 산림 부산물 수입이 없어져 생활에 타격을 받았지만 전씨 때문에
얻은 것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 7월께 부락청년 20여명이 경운기를 앞세우고 전씨가 체류하면서 수입
이 줄었다며 생계대책을 세워 달라고 시위를 벌인 직후 인제군으로부터 연
이율 2%의 융자금 5,000만원이 생계보조금으로 나온 것.
또 전국의 불교 신도들이 전씨 내외가 머물고 있는 백담사를 밤낮없이
찾으면서 이 마을의 때묻지 않은 경관이 알려지기 시작, 지난 가을부터 주말
이면 민박손님이 늘어 그럭저럭 살만하다는 얘기다.
전씨 내외가 백일기도를 마친뒤에는 불교신도 방문이 더 늘어나 백담사를
드나들면서 부엌일을 해주는 아낙네들 4-5명과 사찰주변 2,000여평의 밭에
감자도 심고 토마토 참외 수박 고추등 농사일을 거들어 주는 마을 청장년
10여명은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것.
이들은 하루 1만5,000원에서부터 최고 2만원까지 품삯을 받고 일을 해
가계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전씨 내외의 백담사 체류로 생활에 적지않은 불편을 겪어온 인근 용대리
마을 주민들은 전씨가 국회증언을 위해 백담사를 떠날 것이라는 신문보도에
접하곤 시원함과 섭섭함이 엇갈렸으나 증언후 곧바로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이
확실해지자 달갑잖은 표정들이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주민 김모씨(51)는 "갈곳이 마땅치 않은 전씨가
얘ㅅ 은둔처로 돌아오는 것이 무슨 뉴스거리가 되느냐"며 "중요한 것은 전씨
내외가 마을 주민들의 정상적인 생활을 위해 내년 춘삼월이 되면 백담사를
떠나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여년간 백담사에서 밭일과 꿀 따는 일등을 도맡아 해온 조중열씨
(67)는 "산사의 겨울은 늘 추웠지만 전씨 내외가 지내온 두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