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71).
그는 철창 뒤에는 4반세기 동안의 긴 영어생활을 보내면서도 흑인의 인권을
위한 투쟁을 주도함으로써 백인 소수정권의 압제와 차별대우에 항거하는
상징적 인물로 세계인들에 선명히 인식되고 있다.
*** 백인들까지 내란막을 인물로 평가 ***
남아공 백인 정부의 2일자 대대적인 양보 조치로 곧 자유의 몸이 될 만델라
는 그간의 고독한 투쟁 덕에 앞으로 남아공 정부와 헌법개정 협상에 임하게
될 광범위한 흑인운동 파벌세력들에 대해서도 충분한 도덕적 권한을 발휘
하게 될 것으로 보여 그의 거취가 주목받고 있다.
그는 지난 62년 체포돼 투옥됐으며 2년뒤 정부 전복과 사보타주 혐의로
재판에 회부돼 공판정의 피고석에 선 그로부터 공개연설을 들은 것을 마지막
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그의 포부와 열망은 강제적으로 망각의 세월속에
뭍히게 됐다.
*** 백인 / 흑인 함께사는 사회위해 노력 ***
자신을 민족주의자이지 공산주의자는 아니라고 부르짖으면서도 그가
이끌었던 아프리카민족의회(ANC)가 폭력으로써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책)의 폭력에 대항하는 것외에는 달리 선택할 방도가 없다고 주장해
일단은 과격의 낙인을 찍히고 있다.
이에대해 그는 법정진술에서 "나는 백인지배에 맞서 투쟁해왔으며 흑인
지배에 서서도 투쟁해왔다. 나는 모든 개인이 조화속에, 그리고 동등한
기회를 갖고 함께 사는 민주적이며 자유로운 사회의 이상을 소중히 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이것이말로 내가 삶을 통해 성취해야 할 이상이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내가 이를 위해 죽을 각오가 돼있는 이상이기도 하다."
*** 88년에 국제적으로 주목받아 ***
즈는 64년 6월12일에 7명의 다른 동료와 더불어 종신형이 선고돼 수도
케이프타운 부근의 로븐섬에서 12년간 중노동을 한뒤 육지의 폴스무어
교도소로 이감됐으며 최근에야 비로소 빅터 보스터 교도서의 방갈로형
독방에서 다소 편안히 쉴수 있었다.
로븐섬에서의 12년을 그는 "길고 쓸쓸했으며 낭비적인 기간"이라고 표현
했다.
그러나 만델라가 교도소의 어둠속으로 사라졌음에도 그의 영향력은
결코 훼손되지 않아 바깥의 흑인혁명가들과 온건한 성향의 흑인 지도자
들은 영웅시적 언사로 그를 찬양했으며 온건한 백인들도 그를 내란을 막을
유일한 인물로 보고 있었다.
만델라를 위한 구명 노력은 그가 결핵으로 병원에 옮겨지기 한달전인
지난 88년 7월18일 70세의 생일을 맞이했을 즈음에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 ANC 지도자들, 만델라 지지 ***
그는 지난해 7월 케이프타운에 있는 P.M.보타 당시 대통령의 공관을 방문,
그의 숙적과 다과를 나누며 면담을 가져 그의 명성을 도박에 건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받았고 흑인들 사이에서는 이를 두고 한동안 구설수가 오가기도 했다.
"나의 과업은 매우 제한된 것으로 이 나라의 2대 정치조직들을 협상 테이블
로 가게 하자는 것이다. 정부와 ANC간의 회담이 이 나라의 지속적 평화를
향한 첫번의 중대 단계이다."
만데라는 당시 보타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같이 말했다.
해외에 망명중인 ANC지도자들은 만델라의 충정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들의 면담은 만델러가 곧 석방될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 일으켰고 2개월후
드 클레르크 대통령이 취임해 만델라와 함께 재판을 받은 동료 죄수들을
석방했을때 그의 석방 가능성도 비로소 현실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만델라는 항상 무조건 석방을 고집했고 자유의 대가로서 백인정권에
대한 ANC에 의한 게릴라전을 부정하라는 제안을 끝내 거부한 것이 일관된
입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