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은 민주/민정당에 이어 통합3당 가운데 맨 마지막으로 5일 상오11시
세종문화회관 별관에서 임시 전당대회를 열고 합당을 의결.
이로써 공화당은 87년 10월30일 구공화당의 맥을 이어 창당한이래 불과
2년3개월여만에 당간판을 내렸으나 구공화당 기간까지 포함하면 27년간이나
장수한 셈.
신당참여 거부의원이 한사람도 없을 정도로 김종필총재를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은 공화당은 전당대회를 날치기 통과식의 요식
행위가 아니라 "엄숙하고 분위기 있게" 치루도록 하라는 김총재의 특별지시에
따라 며칠전부터 총재치사작성팀이 별도 구성되는가 하면 4일하오에는
리허설까지 갖는등 만반의 준비.
이날 대회는 조부영사무차장이 전체대의원 1,795명중 1,500여명이
참석했다고 성원보고를 한데 이어 김효영전당대회의장의 개회선언으로
시작됐는데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김총재의 고별치사와 당기보존식.
김총재는 치사에서 "27년전 조국근대화의 민족중흥을 이룩하고 이땅에
자유민주주의를 꽃피우겠다는 숭고한 이념과 목표아래 민주공화당을
창건했다"고 감회를 피력.
김총재는 "60년대에는 5000년을 이어온 가난을 씻었으며 70년대에는
산업화의 기반을 다져명싱공히 <한강의 기적>을 이룩함으로써 세계속의
한국으로 발돋움하는 민족도약의 여명을 맞았"고 공화당의 치적을 자책.
김총재는 "80년대에 들어와 당의 깃발이 내려지고 동지들이 산산히
흩어지는 아픔속에 7년세월동안 무위와 침묵을 강요당함으로써 기약했던
민주화의 꿈은 여지없이 깨어졌다"면서 "그러나 87년 가을 역사의 순리에
따른 민주화 골목에서 불사조같이 일어나 원내 교두보를 확보했다"고 강조.
이어 김총재는 치사의 대부분을 4당구조의 문제점과 90년대에 해야할일에
관해 밝히면서 "이제는 이념과 정책/노선과 색깔에 따라 정책경쟁을 하는
정치체질로 탈바꿈해야 한다"며 평소 지론인 <색깔론>에 다른 보혁구도의
정계개편을 거듭 강조.
김총재는 마지막으로 "한사람도 이탈자 없이 통합신당에 참여해 달라"고
촉구하고 "신당은 공화당의 <발전체>이며 3당이 완전히 하나로 용해된
융화된 <우리의 당>이라고 말했으며 참석대의원들은 열렬한 박수로 지지를
표시.
총재치사후 대의원들은 윤재기의원이 동의한 3당통합및 수임기관으로
당무회의를 지정한다는 내용의 동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
이어 당기보존식이 거행됐는데 최각규사무총장과 조부영차장이 단상에
놓인 당기를 내려 김총재에게 전달.
이순간 드로브작의 신세계등 배경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극작가인
김석야비서실차장이 지은 헌시를 탤런트 박병호씨(성동갑구 지구당위원)씨가
낭독하면서 식장은 숙연한 분위기.
공화당의 역사를 읊은 이 헌시는 <수레바퀴>와 <황소>로 상징되는 신/구
동화당기가 민족중흥의 역사속에서 승자의 깃발로 영원히 펄럭일 것이라고
예찬했는데 공화당기는 오동나무함에 보관되어 국회 헌정자료실에 보관될
것이라고.
이날 임시전당대회는 당기보존식에 이어 민족중흥회회장인 김예용고문의
만세삼창으로 1시간여만에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