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대국회때 무소속으로 원내생활을 시작, 민추협 상임위원을 맡으면서
당시 민추협 의장이었던 김영삼최고위원과 인연을 맺은 약사출신의
3선의원.
야당생활중 의원들간에 정치적 "노선"이 첨예하게 대립할때도 대인관계가
원만해 비교적 중진및 소장의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었다.
3당통합당시에는 민주당내 상당수 비주류 중진/소장의원들이 잔류여부를
놓고 좌고우면 하는 상황에서도 "3당통합만이 구국의 길"이라는 확고한
자세를 취하면서 중진들의 신당이탈을 막는데 큰 몫을 했다.
4.19 당시 부산대 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국회에 진출한 후로는 12대때
신민당 수석원내총무를 역임한데 이어 13대때는 민주당 김총재의 직계가
아니면서도 당요직인 사무총장에 기용된 바 있다.
53세로 부인 박순자여사와의 사이에 1남3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