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 정상회담의 실현소식은 매우 충격적이다.
영사처의 교환설치가 있은지 불과 3개월, 연내 정식수교가
조심스럽게 예고되기는 했지만 노태우-고르바초프 양정상의
대좌가 이렇게 느닷없이 앞당겨 지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었다.
회담결과를 지켜보아야 알겠지만 양국간의 대사교환을 비롯한
정상국교가 실로 1세기만에 재개되는 극적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정황이 짙다.
미-소는 이번에야 한반도문제를 처음 본격적으로 워싱턴에서 논의할
모양이다.
레이건에 이어 부시와 고르바초프와의 회담에서 한국문제가
그동안 몇차례 논의되었다고는 하나 그야말로 변죽만 울리는데
지나지 않았다.
그때의 상황에선 그럴수 밖에 없었다고 접어두자.
그러나 전범국인 독일의 통일이 눈앞에 닥친 오늘에 피해자인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과 통일기운 조성 책임은 미-소양국이
아니면 아무도 떠맡을 제3자가 있을 수 없다.
아니 한반도 분단이 한국인의 뜻에 반하여 순전히 미-소의 편익위주로
이루어졌다는 엄연한 사실에서 그 두나라는 한반도 통일문제에 관한한
엄격히 제3자가 아닌 것이다.
우리가 그냥 하기 쉬운 말로 결자해지를 뇌까리는 것은 아니다.
해방직후의 국내적 혼란, 6.25동란의 책임, 쌍방간의
극한대립, 이 모든책임을 남에게만 덮어씌우려는 것도 아니다.
좀더 우리가 깨어 있었다면 그 여러 고비를 그런 식으로 보다는 선택의
폭을 넓힐 수도 있었을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세계 공산권의 변화가 고르바초프라는 현명한 지도자의 출현으로
의외로 신속히 가속되고 있는 속에 북한은 그 조류를 거부하는 몇
안되는 나라의 대표격이다.
지난번 인민회의에서 김일성은 자신의 집권을 다시 연장하고 아들
정일의 후계 준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뿐 아니라 정치단속, 경제개방의 뒤틀린 책략을 전개하면서 이미 가입한
핵확산금지조약 탈퇴위협을 서슴지 않는등 앞뒤 안맞는 술수를 농하고
있다.
그것이 단순히 임기응변적 제스처라고만 볼 수 없는 것은 남쪽에서의
사회불안이 있을때마다 파괴선동을 조금도 늦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도 입증된다.
남한의 사회/정치불안을 적화통일의 가능성으로 오인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에서 깨어나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의 집권집단이 납득할 만한 대안이 이번 회담에서 아울러 천명되어야
한다.
첫째로 남북당사자간의 대화 불가피성, 인적 물적 교류의 유익성,
평화조약의 대치 및 감군으로의 단계적 이행가능성을 현재화하는
일이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수순의 도치유혹이다.
평양정권의 일관된 전략전술이 미군철수를 노린 선감군임을
회담 당사국들은 분명이 기억해야만 한다.
정부가 이번의 연쇄회담을 능동적, 주체적으로 이끌 수 있으려면
역사의식에 투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업은 19-20세기에 걸친 국가의 불운을 정리하여 21세기의
번영을 준비하는 실로 대국적인 차원이다.
여기에는 당략이 끼여들 수 없다.
이번 대사의 성공적 수행이 국내 정치 경제 사회의 혼미타개에
일대 전환점을 만들 수 있음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충분조건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참여자를 필두로, 소위 민중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계층이 시대사조를 올바르게 파악하여 대아와 소아, 대리와
소리를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상하 모든 계층이 티끌만한 소리의 양보에도 인색한 채로는
어떠한 국면이 새롭게 전개되더라도 무용지물이 되어 결국 19세기말 이래의
비운을 되풀이하기 십상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