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에서 시대구분은 역사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와 직결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6.25 40주년을 맞는 오늘 우리 사회는 예년에 없이 여러 각도에서 6.25를
재조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사회분위기는 이제 6.25를 극복하려는 사회적 의지가 표출
되는 것이 아닌가싶다.
6.25의 극복은 바로 분단의 극복과 이어진다.
오늘 우리는 참으로 민족사의 일대 전기를 맞고 있다. 냉전의 와해로
통일의 계기를 잡은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마치 2차대전종료에 따른
일본의 패망이 그대로 우리 민족의 진정한 해방과 연결되지 못했듯이
주체적 역량이 모자라서는 또 다른 혼란에 휩쓸릴지도 모를 위기에 처해
있기도 하다.
실제로 한반도를 국제적으로 규정하고 있던 냉전질서가 와해됨에 따라
이미 안으로 우리 정치 경제체제를 이런 국제흐름에 적응시켜야 한다는
과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나라안팎의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변화"를
수용하는 일이다.
우리 정치와 사회구조의 탈냉전화, 다시 말해 우리속의 냉전적사고를
정리하는 일이 모색되어야 하며 경제에서 냉전의 와해가 닥쳐오고 있는
세계경제지도의 개편에 맞춰 북방지향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사노의 전환이 하루 아침에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명확한 목표와
거기 도달하는 시간표를 갖추는 일은 시급하다. 정치의 탈냉전화가
중요한것도 우회적일는지는 모르지만 일부 학생이나 재야일각의
북한편향이 설자리를 잃고 있는데서도 설득력을 갖는다.
중략.....
사실 북한의 이른바 주체사상이나 개인숭배는 바로 이렇게 그들의 사회
주의 경제의 효율저하에 대응해서 정신적으로 사회적 동원능력을 강화해
보자는 것이 숨겨진 목적이다.
그러나 86년이후 북한이 김일성 신년사에서 매년 자랑스럽게 발표하던
경제통계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 주체사상의 효능이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는 증거다.
6.29이후 사회의 민주화에 그러한 편향들이 일정한 장ㅇ요인이 되어
왔던 만큼 그런 편향에 구체적으로 대응했던 정치기능이나 사고가
달라질수 밖에 없다.
사실 우리 정치가 기본적으로 북과의 대결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기본조건으로 짜여졌던 것은 분명하다.
이제 냉전의 와해는 무엇보다 국내정치의 선택폭을 크게 넓히면서
하반도 21세기를 위한 창조적 동기를 만들어 나가는 정치를 우리는
기대할수 있게 되었다.
7월에 들면 각종의 납북회담이 재개된다. 정부는 이미 경제적으로
협조하면서 정치적으로 개방을 돕는 동반자관계로 탈냉전시대의
대북한관계원칙을 세워 놓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북이 남과 적대하지 않으면 그자체가 존립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볼때 이같은 동반원칙의 이논과 현실은 매우 다르다.
그 갭을 어떻게 메우느냐가 앞으로 여러 수준의 남북대화에서 보이지
않는 주제가 될 것은 분명하다.
냉전이후를 맞아 우리정치와 경제가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한반도
전체라는 새로운 입지를 마련해 나갈 호기를 맞고있다고 지적했거니와,
우리 사회가 이런 도전에 적극대응하는 길속에서 6.25 40년, 남북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찾을수 있다.
6.25의 촉발자로 객관화된 김일성도 그런 남의 능동적 대응앞에는
변화를 거부치 못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