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와 성균관대의 하계 농촌봉사활동반 대학생 1천7백80여명이 27일
낮 40대의 버스에 나눠타고 서울을 출발, 이날 하오 강원도 횡성등 7개
군내 87개 마을에 도착했으나 주민들의 거부로 대부분 마을에 들어가지
못한채 일부는 철수하고 일부는 동구밖으로 야영을 하면서 첫날밤을
지샜다.
이날 고대 학생들의 경우 20여대의 버스에 분승, 하오 5-7시 사이에
횡성군내 29개 마을에 3백50명, 철원군내 19개 마을에 3백70명, 인제
군내 20개마을에 3백90명등 3개군내 68개 마을에 1천1백10명이 도착했다.
성대 학생들도 10여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거의 같은 시각에 영월군내
11개 마을에 1맥50명, 평창군내 4개 마을에 1백50명, 장선군내 8개마을에
2백50명, 홍천군내 6개마을에 80명등 4개군내 29개 마믈에 6백30명이
도착했다.
그러나 대부분 주민들은 이들 학생이 "전대협 주관아래 반정부여론을
형성키 위해 현지에 온 운동권 학생들"이라는 정보 입수, 이들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저지했다.
*** 일부는 마을입구서 야영, 일부는 새벽에 철수 ***
이날 하오5시30분께 영월군 북면 문곡4리에 도착한 성균관대학생 34명은
주민 50여명이 마을 입구에서 농활학생들의 마을 진입을 막으며 받아주지
않는 바람에 28일 새벽2시까지 주민들의 협조를 요청하다 강경한 반대에
부딪치자 충북 제천으로 40km를 걸어서 철수했다.
또 영월읍 문산2리에 들어가려던 성균관대생 33명은 주민들이 받아주지
않아 영월읍 삼옥리앞 들판에서 야영을 했으며, 나머지 5개마을에
들어가려던 이 학교 학생들도 마을에 들어서지 못하고 영월읍내 여관
등에서 투숙했다.
한편 평창군내 농촌마을에 들어가려던 1백여명과 장선군내 마을에 가려던
2백여명등 모두 3백여명의 성균관대학생은 이날 하오 평창군 용평면
장평리에 도착했으나 평창군 노인회원 및 6.25 참전용사회와 장선 주민등
1백여명이 마을에 들어가는 것을 제지해 이날 하오 10시께 충북 제천지역
으로 철수했다.
고려대 농활팀 3백17명도 27일 하오6시께 철원군 금화읍 도창리등 13개
마을에 도착했으나 주민들이 "대학생들의 농활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농활을 거부해 동구밖 들판이나 하천벽에서 천막을 치고 밤을 지샜다.
또 이날 하오 인제군지역을 찾은 고려대 농활팀 3백30명도 북면 월학2리와
3리등 마을 주변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으며 농민회원등의 도움으로
일부는 마을에서 충돌없이 첫날을 보내기도했다.
이날 하오5시30분께 영월군 하동면 예밀2리 동구밖에 성대생 농활반원
40여명이 도착하자 주민 50여명이 몰려나와 이들 학생이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지했다.
이들 주민은 "우리 마을에서는 농활반의 도움을 원치 않는다" "농활
반원들을 잠재워 줄 사람도 없다"는 등의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를
앞세운채 학생들의 앞길을 가로 막았다.
농민 김형원씨(43/황성군 둔내면)는 "지난해 총장의 추천서를 휴대하고
지도교수까지 대동한 대학생 농촌봉사활동반원들을 마을에 들어오게
했다가 그들이 운동권 학생으로 돌변해 밤낮으로 정부비방만 하는 바람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제 농민들도 세상사를 스스로 판단하고 분석할수
있을 만큼 됐고 의식수준이 높아져 운동권학생들의 농촌봉사활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마을에 들어가지 못한 대부분의 농활반 대학생들은 시/군에서 미리
농민들을 설득, 우리들을 내쫓으려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마을 청년들과
입씨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홍천군을 찾은 성대 농활팀 1백70명은 이날 하오 7시께부터 9시
까지 사이에 화촌면 굴운리등 8개 마을에 도착, 주민들의 협조로 마을회관
과 농가에서 잠을 잘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