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해방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마흔다섯번을 지내면서 무던히도
되뇌던 물음이다. 누구의 입에서나 감개무량이란 둔사는 나왔을 망정
누구도 이 물음에 정답을 대지는 못한것 아닌가.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당연한 정답일터이다. 그러나 그것은 해방후
수삼년간에나 통용될 대답이지 20주, 30주, 아니 45주를 세면서 그 대답을
되풀이 할순 없다. 그래선 안된다.
언제까지나 한일합방의 피해의식, 남북분단의 피동적 사고에서 머물수는
없다. 따지고 보면 그 비운들은 우리들이 자초한 것들이다. 개국을 거부한것,
개화를 마다한것 모두가 그누구아닌 우물안 개구리였던 우리들 자신이었다.
북에서 희한한 일인극이 저리도 집요하게 길게 연출되는 것도 따지고보면
다 우리백성들의 어리석음이 원인이다. 남에서 정치가 끝없이 방황하는것,
민주화가 공전하고 사회가 사나워진것도 따지고보면 우리들 자신의 용렬성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용렬성은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얻었으되 나자신으로 부터의
해방을 이루지 못한채로 주저앉은데서 얻은 병폐다. 나아닌 오직 타인을
찾아내 그들을 원망하고 그들에게 탓을 돌리는 우리들 몸에 밴 노예근성이
유죄임을 이제라도 스스로 깨우쳐 나 스스로부터의 해방을 성취해야한다.
45년동안 강산은 변했다. 잠시 되돌아보면 인구도 늘고 먹고 입고 사는
사정도 크게 변했다. 변하지 않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그러나 단 한가지 요지부동한 것, 그것은 바로 우리들 마음속의 노예
근성이다.
더러는 홍익인간을 겨레의 정신적뿌리라고 한다. 더러는 경로효친의
유교사상을 우리의 미덕이라고 자찬한다. 근자에는 근면을 덕목으로
내 세우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사회, 이 경제, 이 정치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자. 어디에
그 덕목들이 숨쉬고 살아있다고 큰소리 하겠는가.
만삭의 임산부를 막무가내로 폭행하는 패륜이 만성화해가는 사회,
점잔빼는 자칭 지성인들이 산하를 오염시키는 몰염치의 확산, 제발로
서기도전에 낭비로 치닫는 경제의 몰골, 표준어 하나 쓰기 거부하면서
감투병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저 한심스런 정객들의 짓거리들, 요좁은
땅위에서 다시 골이 패어가는 지역대립 등등, 어디하나 문화민족의
싹이 엿보이는가. 아무에게도 노예가 아닌, 독립된 인격의 자긍이
엿보이는가.
그렇다. 일제하 35년보다 10년이 더긴 45년의 대립을 앞으로 또다른
45년안에라도 진정한 통일로 상장할 양이면 남북 6천만, 아니 남의
4천만부터라도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을 먼저 성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사람 한사람이 자기의 할일을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않으려 항상
노력하는 독립인격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