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정치감각을 갖춘 서울대교수 출신.
노태우대통령과는 민정당 대표시절부터 연을 맺어 자문역을 맡았으며
대학강단에서도 현실 정치에 대해 항상 관심을 피력해왔다.
특히 지난 88년 6월 서울대 교수시절 민정당의원 연수회에서 광주사태의
원인에 대한 토론중 "김대중씨의 외곽을 때리는 노련한 정치기술 때문에
광주사태가 발생했다"고 말해 정가의 파문을 일으키는 바람에 대학 강단을
떠났다가 6개월후에 청와대 정치담당 특보로 임명돼 그동안 노대통령을
측근에서 보필해왔다.
국회의원과 장관자리를 여러번 거절한 <지조있는 교수>로 이름나
있었으나 청와대에 들어와서는 노대통령의 통치이념을 체계화시켰고
지난 3월 홍성철전실장의 후임으로 비서실장에 발탁됐다.
귀족풍에 지적인 오만함이 종종 지적되기도 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분명히
밝히는 소신때문에 민자당 지도부와 가끔 의견충돌을 겪기도.
그러나 뛰어난 정치감각으로 학자출신답지 않게 업무를 치밀하고 노련하게
추진해 왔으며 주위사람들을 설득하는 힘을 노대통령으로부터 인정받아
노대통령 집권후 반기의 총리로 낙점됐을 것이라는 분석들.
나전모방 창업주의 장남으로 서울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한뒤
미국암스트롱 주립대 조교수를 역임.
부인 지연월씨(55)와의 사이에 1남1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