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자유시장경제사회를 떠받치고있는 지주는 무엇일까. 무엇이
무질서한것 같은 일상의 경제활동을 질서있는 사회현상으로 이끌어가고
있을까. 법일까,제도일까 아니면 관행 또는 관습일까. 이도저도 아닌
또다른 무엇일까.
흔히 "룰" 곧 규칙이강조되곤한다. 경제활동은 게임이며 공정해야한다.
그리고 공정한 게임을 위해서 룰이 필요하다는게 규칙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이어 수많은 실정법률과 그에 준거해서 마련된 숱한 규정과
제도적 장치의 중요성이 아울러 강조된다.
그러나 법과 제도이상으로 중요한 룰이 있다. 보이지않고 형체도 없는
룰이다. 다름아닌 신용이다.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무수한 경제주체들간에
실정법을 성실하게 준수함은 물론 성문화되지않은 도덕률과 관행까지도
지킨다는 "약속"과 "신뢰"가 있음으로해서 비로소 질서있고 공정한
경제활동이 가능해진다. 경제주체들이 서로를 믿지못하는,신용대신
거미줄같은 법률과 제도적장치만으로 모든것을 다스려야하는 사회의
경제활동은 진정으로 공정하거나 자유로울수 없고 성장과 발전은 더더욱
기대할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의 경제활동은 신용부재속에 영위되고 있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믿기 어려울뿐아니라 신용이 경제활동에서 하나의
귀중한 무형자산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다시말해서 우리의
경제활동은 신용사회와 너무나 거리가 먼 현실속에 꾸려지고 있다.
신용이 일상 경제활동의 뿌리를 이루고 기둥이 되는 신용사회,또 실정법과
제도가 신용의 중요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부추기는 사회에서는 첫째 모든
경제활동에 수반되는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획기적으로 경감할수
있고 둘째 불신사회가 초래하기쉬운 온갖 비능율 비효율을 제거 내지
개선할수 있다. 한국경제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최대 과제는 다름아닌
고비용(high cost)과 비능률(inefficiency)을 극복하는 일이며 신용사회의
조속한 정착이야말로 그 해답이다.
신용사회가 되면 이중삼중의 규제와 번거로운 절차가 대폭 축소된다.
정부는 물론 기업에서도 법과 질서,공정한 경제활동과 관련해서 소요되는
엄청난 비용과 비능률,시간과 인력의 획기적인 절감이 가능해진다.
정부가 기업을 믿지 않고 기업을 포함한 각급 경제주체 상호간에 불신의
벽이 두터워 모든 경제활동의 잘잘못을 오직 법률과 비현실적인
형사처벌위주로 계속 다스리기를 고집하는한 신용사회는 오지않는다.
좌절과 갈등,그리고 특히 전과자를 양산할 뿐이다.
경제범죄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는 쌍벌주의탓으로 부하직원들의 사소한
잘못까지도 사장이 형사처벌대상에 올라 걸핏하면 출국정지,심지어는
해외업무출장중에도 출두지시서를 받곤하는 우리 현실은 바로 그와같은
불신과 법만능풍조에 연유한다. 적절한 비유가 될는지 모르겠으나
기업에서 회장.부회장이 유행하는 까닭도 어쩌면 감투욕이나 감투인플레의
소산이기보다 명목상의 최고경영자에대한 필요이상의 간섭과 가혹한
처벌규정이 큰 탓이다.
부도수표단속법상의 형사처벌도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볼수 있다.
신용추락 그 자체가 무엇보다 무거운 징벌로 인식되는 사회,신용이
떨어지면 살기 어려운 사회가 되면 부도가 굳이 형사처벌과 전과자양산의
표적이 되어야할 까닭은 없다. 미국의 LA가 한국에서 부도낸 사업가나
개인의 도피처처럼 된 현실은 실로 서글픈 일이다. 미국과 같은
신용사회에서는 부도는 곧 신용상실의 표본이고 동시에 일종의 종말에
비유되지만 경생할 길은 열려있다. 매년 50만건이 넘는 파산청구가 법원에
접수,민사로 처리되곤하는게 한가지 좋은 예다.
신용사회는 기업의 인력관리,노사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가령
지금과같은 사원채용방식대신 추천과 면접으로 족해진다.
선진신용사회에서는 그릇된 신상정보와 추천내용으로 채용된 직원이
금전사고를 내면 추천기관이나 회사에 배상청구까지 가능하지만
우리사회에서 추천을 의뢰하거나 전직장에 문의하면 적당히 잘 대답해주는
게 미덕이다. 물론 책임을 질리는 만무하다.
경제활동이란 곧 거래이며 거래는 신용에 기초해서 이루어질때 가장
능률적이고 비용도 최소화된다. 우리사회에도 과거 신용은 중시되었고
그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몽당연필에 침을 발라 깨알같이 쓴
동네구멍가게의 외상장부가 훌륭한 예이고 계는 우리 고유의
신용사회상징으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
다만 이같은 전통적인 신용사회의 도구와 의식이 현대 산업사회의 서구적
선진적 신용사회의 그것으로 접목 발전되지 못한데 문제가 있다. 서구의
근대적인 법과 제도를 여과없이 도입하여 그것을 경제활동의 유일한
준칙으로 신봉하고 게다가 법이전에 정치권력이 큰 위력을 갖는 풍토에서
신용이 설 땅이 없었다.
신용이 경제활동의 지주가 되는 사회-한국경제의 선진화 국제화는 곧
그와같은 신용사회로 가는 것과 같은 뜻이 되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