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민족이 한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들어선
날이다.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은 무엇보다 탈냉전시대 남북한관계의
기본틀이 국제적으로 설정되었다는데 의미를 두어야할 것이다. 탈냉전시대
한반도에는 국제감각에서 보면 두개의 유엔회원국이 공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북의 두 체제는 이같은 공존의 제도적 실질적 방식을 지금부터
마련해 나가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시대 한반도의
분할이 세계적 냉전체제의 일부였던 만큼 한반도주변세력도 새로운
세계질서의 일부로 한반도체제개편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유엔동시가입의 방향이 확정되면서 남북한접촉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고
한국과 중국관계도 급진전하고 있다. 또 핵문제가 매개가 되면서 미국과
북한간의 교섭이 수면위루 부상하고 있으며 여기에 자극받아
일북한관계정상화도 급템포를 예정하고 있다.
미일중소와 남북한의 여섯나라가 벌이는 게임이어서 복잡다기하지만
기본적인 형식틀은 지난해 독일에서의 2+4공식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현재 진행중이거나 예정되어 있는 6자관계의 전개를 정리해 보면
몇가지 가닥을 잡을수 있다. 남북한유엔가입의 확정에 이어지는 가장 큰
새질서구축의 줄기는 미.북한간의 대화이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에 동의했고 이것이 미국의 주한미군의 전술핵철수와 연계되면서
미.북한관계설정이 시작되고 있다. 형식의 면에서는 6.25전쟁의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이 휴전협정을 정식강화조약으로 대체하는 이른바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미국은 북한이 종래 강변해온
미.북한양자회담을 거부하고 협상의 당사자로 한국을 참여시키는
3자회담형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최근의 핵문제에 관한 한미간의 협의가
그것으로 이것이 한국정부의 한반도비핵지대화구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6.25의 국제법상의 종결이라는 형태로 미국과 남북한한 한 테이블에 앉는
것은 그러나 또다른 당사자인 중국을 배제한다는 난점이 있는데다 소련이나
일본도 동북아새질서의 기축이 될 한반도평화구조정립에 적극 개입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같은 국제움직임은 자연히 한반도문제에 관한
주변당사국회의를 요구하게 될 터이다. 한한중의 빠른 국교수립이
예정되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며 일본이 조만간 북한과 국교정상화에 이르게
될 것도 필지이다.
눈앞의 한.중,미.북한국교가 매듭지어지면서 곧 바로 동북아판 2+4의
이른바 한반도평화구조구축작업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동북아의
경우가 유럽처럼 큰 파란없이 안정적인 새질서창출로 귀결될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힘들다. 탈냉전이 이미 움직일수 없는 천하대세임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시아쪽에는 지난해 유럽의 경우와는 다른 두가지 장애가
있다. 그하나는 지난85년이래 격화되온 미.일간의 경제마찰이
동북아국제질서의 개편흐름에 따라 종래의 마찰에서 "쟁패"의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 일본이 이른바 동북아새질서를 기본적으로 새로운
엔경제권의 구축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나 미국이 종래감각에서는
생각조차 할수 없었던 일본자윙대에 대한 견제를 분명히 하고있는 것들이
모두 전에 없던 일들이다. 지난번 미소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의
실업인들이 소련을 미국의 뉴 프런티어로 간주하고 있다는 보도가
인상적이었다. 한반도평화구조구축을 주도하고 그 이니셔티브로
동북아경제질서에 적극참여할 것이라는 미국의 장기목표는 이미 굳어진 것
같다. 한편 일본은 막강경제력을 무기로 소련과의 영토반한환제나
남북한의 대립관계를 활용하면서 그들 경제력을 정치력으로 인정해 줄 것을
주변에 강요하고 나올 것이 분명하다. 경제지향적인,따라서 평화적인
미국에 비해서 권력지향적인 일본의 움직임이 문제가 될것은 물론이다.
또 하나 앞으로 한반도평화구조정착의 관건은 두말할 것도 없이 남북한의
두체제가 어떻게 종래의 적대관계에서 벗어나 평화공존의 룰을
마련하는가이다. 기본적으로 남과 북은 지난 시대 "적대의존"해왔다.
상대방에 대한 적대를 주요한 사회정통성의 원천으로 삼아왔다는 뜻이다.
탈냉전이란 한마디로 세계규모에서 미소가 "적대의존"을 포기한 것을
의미하는 만큼 한반도내에서 남북한도 그같은 "적대의존"에 대신할 새로운
사회구성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과제는 피할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6.29선언이래 민주화의 길로 들어선 것이나 북한이 강력한
개방압력을 받고 있는것이 똑같이 탈냉전흐름의 표현이다. 북의
반대명분에도 불구하고 유엔동시가입이 현실이 된 시점이다. 우리외교의
오랜 숙원이 이뤄졌다는 감상을 버리고 냉철하게 우리자신과 주변을
재점검해야할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