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도 예산(일반회계기준)이 올해의 본예산에 비해 23%나 대폭 늘어난
33조1천8백여억원규모가 된다. 이는 81년이후 최대규모의 팽창률이다.
지난14일 정부 여당이 이러한 예산규모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그만 집안살림도 아닌 나라살림살이에 돈들어 갈데가 어디 한둘일까마는
재정규모의 급격한 팽창이 몰고올 부작용은 결코 과소평가될수 없다. 우선
그 필요성과 그럴듯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재정팽창은 국민의 세부담으로
직결된다.
뿐만아니라 물가불안 국제수지적자누적으로 한국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앞장서서 긴축의지를 다지는
일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이에 역행하는 일을 정부가 솔선하고 있다.
우리는 예산규모가 크고 팽창률이 높다는 것만을 두고 시비하고자
하는것이 아니다. 정부는 예산팽창률이 23%가 아니라 5. 7%에 불과하다는
수자풀이도 하고 있다. 내년도 예산규모가 1,2차 추경예산까지 포함시킨
올예산규모보다 5. 7%밖에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옳은 수자풀이다.
그러나 추경예산편성도 떳떳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정부는 피할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재정수요가 충분히 예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팽창예산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세수예상치를 낮게 잡는등 전략적으로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편법을 써왔기 때문이다.
예산에서 경직성경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3분의2에 달하고 있는데다
사회간접자본시설확충을 비롯 서둘러 해야할 사업이 많기 때문에 예산을
늘려잡을수 밖에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본예산이든 추경을 포함하든 예산편성에서 중요한 것은 국민복지를
증대시키고 생산력증강으로 성장잠재력을 배양할수 있게 짜여져 있느냐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 세출에서 경직성경비를 포함,낭비적요인이
없는가,불요불급한 것은 없는가,우선순위가 제대로 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
분명히 검토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같은 점에서 볼때 내년도 예산편성에 몇가지 문제점을 쉽게 찾아볼수
있다. 내년 상반기에 14대 총선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연말께에는
대통령선거등 중요한 정치일정이 예정되어 있다. 따라서 각종 공약사업과
민원해결차원의 지역사업등에 필요한 예산확보라는 정치적 배려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긴축의지를 더욱 다져야할 시점에서
81년이후 최대규모의 예산편성에 당정이 쉽게 합의할수 있는가.
여야 가릴것없이 애당초 무리한 선거공약을 내세워서는 안된다. 그것도
단기간에 또는 재임기간안에 그걸 달성하겠다고 해서는 안된다. 자원의
유한성과 사업의 우선순위를 전제로 한다면 공약이행이라든가,민원사업등을
냉정히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이점은 주택 2백만호건설을 무리하게
집행한 결과 그것이 한국경제에 얼마나 큰 부작용을 남겼는가를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더욱이 사회간접자본시설확충의 필요성은 엄연하지만 예컨대
고속전철건설과 같은 사업을 서두를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이런 사업을
하려니까 예산은 늘어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안이하게 인기위주의 선심용 팽창예산을 짜고 이를 집행할 여유는
우리에게 없다. 물가안정기반이 흔들리고 있고 국제수지적자누적으로
어느새 잊혀져 가던 외채망국논이란 말이 되살아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선거에서 이기고 나라경제는 거덜나는 일이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근로자와 가계의 내핍을 이야기하고 통화량을 억제한다면서 정부가
팽창예산을 짜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설득력을 잃는다.
최근 한은에서는 재정지출을 확대하면 통화증발을 가져와 일시적으로는
실질소득을 상승시키지만 물가에 지속적인 악영향을 끼쳐 실질소득을
감소시키고 민간투자를 위축시킨다고 분석하고 있다. 통화량을 일정하게
유지한다고 할때 정부재정지출확대는 기업이 쓸돈의 줄어들이
시중실세금리를 올리고 민간투자가 줄어들어 소위 구축효과(크라우딩
아웃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론 새삼스런 이야기는 아니지만 다시
한번 새겨볼 일이다.
정부가 먼저 긴축의지를 내세우고 가계 근로자의 자제와 기업의 분발을
촉구해야 옳다. 내년에 닥칠 정치계절을 맞아 팽창예산을 짜면서 이런저런
사업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기보다 긴축의 당위성을 국민에게 설득하고
호소하는 것이 옳다.
낭비없는 효율적인 예산편성과 집행,돈안드는 선거,정부스스로가
민간부문에 앞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솔선수범,이 모든게 한국경제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활기를 되찾을수 있는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