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4년 9월 `서울대 학원 프락치사건''으로 구속돼 1심에서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자 자신이 직접 호소력있는 항소이유서를
써서 화제가 됐던 유시민씨(32.서울대 경제 4)가 이번 여름학기 수강을
끝으로 오는 30일 하기 졸업식에서 입학 13년6개월만에 졸업장을 받게
됐다.
지난 78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졸업하기까지 각각 두차례씩 제적과
옥고를 치렀던 유씨는 24일 지각졸업을 앞두고 " 이번 졸업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인 학창생활을 마무리짓고 새로운 설계를 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자식을 감옥으로 보내고도 울지 않다 제적통지서를
받고서는 눈물을 흘렸던 어머니가 나의 졸업을 가장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유씨는 유신정권이 막을 내리고 `80년의 봄''을 맞았던 당시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으로 활동하다 그해 5월17일 계엄 포고령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것과 동시에 제적됐으며 같은해 9월 강제 징집돼 군복무를
마쳤다.
그는 84년 8월 운동권 학생들에 대한 대대적인 복교 허용조치로 복교해
복학생 협의회 회장으로 일하다 같은해 9월 재수생등 4명을 `프락치''로
판단, 집단 구타한 이른바 `서울대 학원 프락치사건''에 연루, 다시 구속과
함께 제적됐었다.
프락치 사건으로 1심에서 1년6월을 선고받았던 유씨는 당시 우리사회의
모순을 적시하고 자신이 운동권에 몸담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소상히
밝힌 호소력있는 항소 이유서를 고등법원에 제출하는등 곡절을 겪은 끝에
징역 1년으로 감형받기도 했다.
그는 옥고를 치른 후 87년 6월 항쟁의 여파로 복교가 가능했었으나
민청련에서의 활동으로 수배를 받는 처지였기 때문에 학교로 되돌아 가지
못하다 88년 4.26 총선후 수배가 해제돼 그해 여름 다시 복교한 후
이해찬의원(무소속)의 보좌관으로 5공청문회 광주특위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 말 이의원의 보좌관역을 그만 둔 유씨는 "정치인이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데서 이상적인 직업이기는 하나 개인적인 취향에 맞지
않는 것 같다"면서 "졸업후 소설,시나리오등 다방면의 저술활동에 종사해
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지난 88년 결혼, 1 녀를 두고 있는 유씨는 "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자랑스럽다고 할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해야할 일을 했기에 부끄럽다고
생각지는 않는다"며 "사회가 젊은이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