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정부가 꾸리는 나라살림의 내용을 알 권리가 있다. 반대로 정부는
그 내용을 가급적 소상하게 알릴 의무가 있다. 나라살림에서의 씀씀이,즉
지출의 원천이 곧 세금인데 국민의 동의를 얻지않고는 세금을 거둘수가
없고 따라서 씀씀이를 정할수도 없는게 민주정치의 기본틀이기 때문이다.
절대왕정의 붕괴와 엄격한 조세법정주의를 바탕으로 한 의회의
예산승인권확보등이 모두 나라살림에 얽힌 근대 민주주의의 발달사와
관계있다.
정부는 어제 국무회의에서 오는 10월2일까지 국회에 제출키로 법정되어
있는 새해 예산안을 정부안으로 확정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
내용을 보도자료로 공개했다. 국회에는 보다 상세한 부속자료들이 동시에
제출되겠지만 일반국민이 접하는 내용은 대개 정부안이 확정되고나서
공식발표되는 자료에 국한된다. 따라서 정부는 가급적이면 이때 최대한
소상하고 정확한 예산내용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막 공개된 새해예산안내용은 그렇지 못하다. 예년과
달리 불과 26쪽으로 압축된 자료는 뭔가 감추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같은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정부가 이날 확정한 새해예산안의 일반회계예산규모는 진작부터
전해진대로 33조5,050억원. 당국의 발표자료는 그 증가율이
91년본예산대비 지난81년의 35. 3%이래 최대인 24. 2%라는 설명은
일언반구없이 2차추경까지 합친 최종예산대비 6. 8%증가라는 점만을
강조하고 있다. 팽창예산이란 지적을 의식해서이다. 내년에 약속대로
추경예산을 편성하지않을 경우에만 비로소 타당성이 인정될 논리라는 점을
우선 문제삼아야겠지만 백보를 양보해서 그게 옳다고해도 세입에서 17%가
넘는 세금수입증가를 계상한것은 일단 국민부담면에서 부정못할 팽창임이
명백하다.
또 정부는 지금까지 사회간접자본확충필요성을 강조해왔으나 정작
사업비비중은 올해 최종예산 37. 7%에서 내년에는 되레 33. 3%로
감소되어 결국 사회간접자본예산도 별로 늘지 않을게 분명한데 당국은
이것을 각종 특별회계계상분과 함께 뭉뚱그려 19. 2% 증가될 것이라고
애써 변명하고 있다.
선거를 겨냥한 선심성 전시성사업이 많은 것도 문제다. 경부고속전철과
새수도권공항을 상하반기에 잇따라 착공하고 그 부문에만 도합 1,700억원을
계상한게 단적인 예다. 국회가 그야말로 유종의 미를 거두는 자세로
알차고 진지한 심의를 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