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대권에 도전,드디어 집권 자민당내
최대파벌인 다케시타파벌의 지지를 받아내 정권획득이 확실해진 미야자와
키이치는 4년전에도 도전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는 의지의 정치가.
당시 나카소네는 다케시타를 지명함으로써 눈물을 삼켜야했으며 그후
다케시타 내각에서 장상을 맡았으나 리쿠르트 사건으로 도중하차를
해야하는 비운을 맞보기도 했다.
대학졸업후 대장성에 들어가 장상 비서관으로서 여러차례 미국을
방문,이케타-로버트슨회담을 비롯해 전후 일.미관계의 형성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산증인이다.
미야자와는 영어실력이 탁월해 통역없이도 수뇌외교가 가능한 일본내의
몇 안되는 정치가로 꼽힌다. 사실상 출마를 표명한 지난 9월초 파벌
연수회에서는 옛 친구이었던 키신저 전 미국무장관과 2시간에 걸친
영어대담으로 행사를 능숙하게 이끌어 나갔다.
외상.통산상.장상.관방장관등 주요 각료직을 두루 거쳐
경제.외교정책면에서는 정계의 제 1인자로 자타가 공인한 반면 당 3역의
경우 총무회장을 단한번 경험했다.
"인사,파벌관리에 약하다","수재지만 차겁다"는 평을 듣는등 인적
통솔면의 취약점이 그의 최대 단점으로 알려지고 있다.
"패도를 택하지 않고 왕도를 걷는다"며 자칫 말려들기 쉬운 정쟁의
와중과는 거리를 두고있는 정치스타일로인해 주변으로부터 정권획득면에서
박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으나 이번에는 선거에의한 결착에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겠다며 결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외교면에서는 "세계평화질서"형성에 공헌을,국내정치면에서는 "현행
선거구제도 발본 개혁"에의한 정치개혁 달성과 "사회적 공정의 실현"을
정치목표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