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련-북한 경협 > 모이세이프 특별기고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소련과 동유럽에서 스탈린사회주의가 붕괴되자 북한의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한반도에 대한 소련의 관심은 1년전 한소국교가 수립되고 소련인들이
새롭게 한국을 "발견"한 이후부터 더욱 고조되고 있다.
한국과 북한을 상호 비교하거나 서독과 동독간의 통일을 한반도통일과
대비해보려는 시도도 행해지고있다.
이같은 시도가 과연 가능하며 또 필요한지는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단지 오늘날 북한의 실상은 어떠하며 소련과 북한의 관계및 한반도통일의
전망은 어떤지를 분석해보기로 한다.
북한은 지난 46년간 여러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해왔다.
일본식민통치에서 벗어난 후 처음몇해동안 북한은 소련의 경제적 사회적
경험을 성전시했다. 소련은 이때 모든 노력을 기울여 북한을 지도자-당-
인민이라는 소련식 권력및 사회구조를 가진 국가형태로 바꾸었다.
60년대가 시작되자 마오이즘(모택동주의)의 영향으로 자립노선이 북한의
정치적 사상적구호가 됐다.
전통적인 배타주의와 우월주의사상인 주체사상이 북한에서 태동됐다.
주체사상은 결국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대체하는 것이었다. 북한이 다른
국가들보다 먼저 마르크스레닌사상이 쓸모없는 실패작이라고 단정한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자연히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은 북한을 "사회주의공동체"혹은 형제국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김일성은 국가원수로서 소련을 20회이상 방문했지만
소련지도자는 단한번도 북한을 방문하지 않았다.
북한은 단한번도 코메콘(공산권상호경제원조회의)의 회원국이었던 적이
없다.
북한은 못에서 컴퓨터까지 생산하는 능력을 보유하고있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비용 가격이나 최적생산량 제품의 질은 고려되지않고있다.
북한의 사회경제적구조의 근간은 사회는 물론 개인의 일상생활
구석구석까지 당과 국가가 지배하는 평등한 생활수준을 목적으로하고있다.
"우리식으로 살아가자"는 슬로건은 오늘날 북한 어느곳에서나 볼수있는
표어이다.
그렇다고 주체사상을 바탕으로한 북한의 개발정책이 국경을 맞대고있는
인근국가들과의 협력을 완전히 배제하고있는것은 아니다.
한국과 미국의 경제교류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지난46년동안 북한에 투자된 소련자본규모는 30억루블정도에 불과했다.
중국및 동유럽국가들의 대북한투자는 그절반도 채 안됐다.
현재 북한에 존재하고있는 소련지원 민영공장은 약70여개에 달한다.
이들공장들은 전체북한 전력의 60%,철강의 40%,석유제품의 50%정도를
생산하고있다.
소련과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북한 뿐만아니라 소련에도 유익하다. 전체
소련수입량에서 북한 상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0.5%에 머물고있으나 소련은
필수품의 상당부분을 북한에서 들여오고있다.
소련과 북한간의 경제협력관계는 경제구조상의 차이로 장애가 많았다.
북한의 기간시설 미비,산업간 불균형,기술낙후등으로 북한에 진출한
소련기업은 풀가동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있다.
북한에 진출한 상당수의 소련기업은 공장설립부터 문제가 발생,조업을
늦추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지난70년에 설립협정을 맺은 한
베터리생산공장은 83년에 가서야 가동되기 시작했다.
소련 북한간 경제협력이 어느정도로 허술한지는 북한에 진출한 소련의 한
베어링 공장에서 알수있다. 연간 1천만개의 베어링생산시설을 갖추고있는
이회사는 현재 가동률이 15%에 머물러있다. 베어링의 공급선이 확보되지
않은 것이 조업단축을 가져온 원인이 되고있다.
북한은 최근 소련이 겪은것과 유사한 길을 걷고있다. 북한은 스스로의
길을 찾겠지만 소련과 비숫한 길을 걸을것으로 보인다.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한반도에 대한 소련의 관심은 1년전 한소국교가 수립되고 소련인들이
새롭게 한국을 "발견"한 이후부터 더욱 고조되고 있다.
한국과 북한을 상호 비교하거나 서독과 동독간의 통일을 한반도통일과
대비해보려는 시도도 행해지고있다.
이같은 시도가 과연 가능하며 또 필요한지는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단지 오늘날 북한의 실상은 어떠하며 소련과 북한의 관계및 한반도통일의
전망은 어떤지를 분석해보기로 한다.
북한은 지난 46년간 여러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해왔다.
일본식민통치에서 벗어난 후 처음몇해동안 북한은 소련의 경제적 사회적
경험을 성전시했다. 소련은 이때 모든 노력을 기울여 북한을 지도자-당-
인민이라는 소련식 권력및 사회구조를 가진 국가형태로 바꾸었다.
60년대가 시작되자 마오이즘(모택동주의)의 영향으로 자립노선이 북한의
정치적 사상적구호가 됐다.
전통적인 배타주의와 우월주의사상인 주체사상이 북한에서 태동됐다.
주체사상은 결국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대체하는 것이었다. 북한이 다른
국가들보다 먼저 마르크스레닌사상이 쓸모없는 실패작이라고 단정한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자연히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은 북한을 "사회주의공동체"혹은 형제국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김일성은 국가원수로서 소련을 20회이상 방문했지만
소련지도자는 단한번도 북한을 방문하지 않았다.
북한은 단한번도 코메콘(공산권상호경제원조회의)의 회원국이었던 적이
없다.
북한은 못에서 컴퓨터까지 생산하는 능력을 보유하고있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비용 가격이나 최적생산량 제품의 질은 고려되지않고있다.
북한의 사회경제적구조의 근간은 사회는 물론 개인의 일상생활
구석구석까지 당과 국가가 지배하는 평등한 생활수준을 목적으로하고있다.
"우리식으로 살아가자"는 슬로건은 오늘날 북한 어느곳에서나 볼수있는
표어이다.
그렇다고 주체사상을 바탕으로한 북한의 개발정책이 국경을 맞대고있는
인근국가들과의 협력을 완전히 배제하고있는것은 아니다.
한국과 미국의 경제교류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지난46년동안 북한에 투자된 소련자본규모는 30억루블정도에 불과했다.
중국및 동유럽국가들의 대북한투자는 그절반도 채 안됐다.
현재 북한에 존재하고있는 소련지원 민영공장은 약70여개에 달한다.
이들공장들은 전체북한 전력의 60%,철강의 40%,석유제품의 50%정도를
생산하고있다.
소련과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북한 뿐만아니라 소련에도 유익하다. 전체
소련수입량에서 북한 상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0.5%에 머물고있으나 소련은
필수품의 상당부분을 북한에서 들여오고있다.
소련과 북한간의 경제협력관계는 경제구조상의 차이로 장애가 많았다.
북한의 기간시설 미비,산업간 불균형,기술낙후등으로 북한에 진출한
소련기업은 풀가동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있다.
북한에 진출한 상당수의 소련기업은 공장설립부터 문제가 발생,조업을
늦추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지난70년에 설립협정을 맺은 한
베터리생산공장은 83년에 가서야 가동되기 시작했다.
소련 북한간 경제협력이 어느정도로 허술한지는 북한에 진출한 소련의 한
베어링 공장에서 알수있다. 연간 1천만개의 베어링생산시설을 갖추고있는
이회사는 현재 가동률이 15%에 머물러있다. 베어링의 공급선이 확보되지
않은 것이 조업단축을 가져온 원인이 되고있다.
북한은 최근 소련이 겪은것과 유사한 길을 걷고있다. 북한은 스스로의
길을 찾겠지만 소련과 비숫한 길을 걸을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