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소보름날". 퇴근길 직장인들은 잠시 동네점포를 기웃거리게
된다. 빈손귀가하면 자녀들이 분명히 실망할게다. 아이들은 집에서
아버지가 손수 사들고 올 부럼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잣 호도 밤등 건과의 고소한 맛은 별개 문제다. 양부모중 누가 민족의
명절을 기억하고,민속의 선물을 마련했는가가 중요하다. 세시절기를
빌미삼아 가장이 작은 정성을 보인다면 필경 아내도 기뻐할게다.
정월은 우리 조상들이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한 달이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가족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절기이기 때문이다. 정월에 명절이 가장
많이 들어있는 원인도 바로 그 뜻이다. 설날 이외에도 초이튿날은
인일이고,십이간지에 따라 상해 상자 상묘 상사일을 따로 정하여 각각
기원과 금기의 날로 지켰다.
그러나 설날을 제외한 정월의 가장 큰 명절은 아무래도 "대보름날"이다.
상원이라고 불렀던 이날에도 수많은 기원의 민속과 풍습이 담겨져 있는게
특색이다. 아마도 보름동안 빌고 또 빌었지만 그래도 미진한 소원을
한꺼번에 마무리하려 했던 모양이다.
아침에 일어나 부럼을 깨물고,"귀밝이 술"로 차가운 청주를 마셨다. 역시
한햇동안 종기나 부스럼,그리고 귀에 탈이 나지 말라는 기원의 민속이다.
또 갖가지 진채식으로 그 해의 더위를 몰아내고,밤에는 열두 다리(교양)를
밟고다녀 일년내내 건각을 기원했다. 특히 이날의 별식 오곡밥은 남의 집
것을 먹어야 복이 온다고 했다. 음식을 나누어 이웃간에 화평을 다지자는
선인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농촌에서 즐겼던 쥐불놓이와 돌싸움(석전)에도 기원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쥐불놓이는 화공으로 농토의 잡귀를 몰아내고 풍년을 비는 의식인데,실제로
월동중인 해충을 태워버리는 효과가 있었다. 거친 돌싸움도 국태민안을
비는 풍속이었다. 나라가 위급할 때 필요한 상무정신을 고취하여 한때
조정에서 권장키도 했다.
"소보름날"에도 고유풍속이 따로 있었다. 그해가 액년으로 드는 사람들은
간지를 적은 종이와 함께 돈을 넣은 제웅(추령)을 만들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비록 액땜을 기원하는 미신이었지만,그 속에 빈자를
구제하여 전통민속의 날을 함께 즐기자는 후한 인심이 들어있었다.
중국산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와 엉뚱하게 외국산 부럼과 고사리나물로
정월 대보름을 지내게 됐다는게 좀 떨떠름하다. 한해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민족의 명절에 올해는 우리 농민의 건재를 기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