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한담> 아마 스포츠계의 대부 김성집 옹(7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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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저렇게 건강할수 있을까"
1919년1월생이니까 올해로 만73세가 넘은 김성집태릉선수촌장을 마주
대하고 받은 소감이다.
왕성한 혈기,젊은 선수못지 않은 당당한체구,우렁찬 목소리,거기다
메달후보쯤 되는 대표선수 개개인에 대한 신상명세까지 훤하게 머리에
꿰매놓고 있다. 그 나이에 그런 기억력,여간 부럽지않다.
세월의 흐름을 잡아놓고 사는 사람같다.
60년 가까운 세월을 오직 선수.임원으로 일관해온 초지일관의 체육인
김성집옹은 한국아마스포츠계의 산증인으로 지금도 태릉선수촌에서
선수들과함께 땀을 흘리고있는 늙은선수(?) 타고난 스포츠인생
-제25회 바르셀로나 하계올림픽이(7월25일 8월9일)4개월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또 바빠지게 됐네요.
김촌장=4월에 접어들면서 선수 임원들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태릉선수촌전체에 경고등이 켜진것 같은 비상시의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지요.
올림픽출전을 위한 개인종목의 선수선발은 거의가 끝났고 일부 구기종목만
아직 올림픽티켓 확보문제가 남아있어요. 금년1월7일부터 2백일 강훈에
들어가 현재 마지막 전술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88서울올림픽때 워낙 좋은 성적을 올렸기 때문에 바르셀로나올림픽을
앞두고 선수.임원들의 어깨가 그어느때 보다 무거워요.
나 개인으로도 체육인생의 "유종의미"를 거두고 싶은 심정이 들어서인지
전보다 더 조급해지는 느낌이에요.
-이번에도 좋은 성적을 거둘수 있을까요.
김촌장=88서울올림픽이후 대표선수의 3분의2가 물갈이 됐습니다.
올림픽이 4년마다 열리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시간의 여유가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도자들은 전혀 여유를 못느낍니다. 어려운집 제사
돌아올때의 "가난한 가장"의 심정과 흡사하지요. 온통 걱정입니다.
잘할수 있을까,전보다 약해지지않을까,온통 회의감만 들게되지요.
그렇기때문에 90년 북경아시안게임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바르셀로나준비에 들어간 것입니다. 선수들이 대거 신진으로 교체돼
작년까지만 해도 걱정이 태산같았는데 금년들어 기량이 크게 향상돼 다소
안심이 들게 됐습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88서울올림픽과 같은 12개의 금메달을 목표하고
있어요.
-지나친 의욕아닐까요. 일부에서는 88서울올림픽이후 한국의
엘리트스포츠가 주춤해졌다고 우려하는 소리가 높던데요.
김촌장=공교롭게 금메달목표가 서울올림픽때의 목표와 같아서
의도적인것같은 느낌이 드실것입니다. 전혀 의도적이 아닙니다. 그동안의
국제경기성적등을 면밀히 분석해 잡은 수치입니다. 거기다
스포츠강국이었던 구소련의 와해와 동구권의 약화도 우리에게 유리한
작용을 할것으로 보여집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7 8개정도를 헤아렸는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년에 걸쳐서 각종 세계대회에서 거둔 성적들을 놓고
볼때 훈련과정에서 조금만 노력을 더하면 3 4개 정도는 더 딸수 있는
것으로 기대가 돼 목표를 상향조정했지요.
유도의 경우가 가장 유망하다고 봅니다. 남자에서 2개,여자에서 2개를
기대해 봅니다. 이외에 레슬링 2개,베드민턴(남녀복식)2개,남자체조 역도
탁구(여자복식)복싱에서 각1개씩을 잡아놓고 있지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최고의 기대치입니다.
-요즘 선수들의 정신자세가 옛날 선수들보다 떨어진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김촌장=좀약해진것 같아요. 내가 운동하는 시절에는 자기가 알아서
했지요. 요즘도 열심히 하는 선수가 많지만 개중에는 자발적이라기 보다는
피동적으로 운동하는 선수도 더러 있어요.
운동이란 신체훈련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정신자세가 중요한
것이지요. 아무리 신체훈련이 잘 돼 있다해도 정신자세가 단단히 무장돼
있지않으면 승부세계에서는 상대편을 이기기가 어려워요.
-왜 그렇게 됐다고 보십니까.
김촌장=물질사회가 돼서 그런가봐요.
황금만능 풍조의 영향이 아닌가해요.
과거에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개인과 국가의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운동을 했는데 근래들어서는 명예보다는 물질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메달을 따서 물질의 보상을 받고난 다음이거나 또는 물질의
보상이 약속만되면 선수들의 의욕이 저하되는 경향을 보이지요.
이것이 어디 체육계 뿐이겠어요. 사회전체의 풍조이지요.
체육계라고해서 고고할수만은 없다고 봐요. 다시 강조하지만 요즘
선수라고 다 그런것은 아닙니다.
전보다 못지않게 아니 더 열심히 하는 선수들도 많이 있어요.
-김옹의 선수촌생활은 몇년이나 됐나요.
김촌장=76년부터니까,한16년됐군요. 이제는 태릉선수촌이 집보다 오히려
더 친숙한듯한 느낌마저 들어요. 그동안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개막을
앞두고 훈련이 막바지에 들어갈때면 1주일내내 선수촌에서 선수들과 숙식을
하고 일요일에만 집에 잠깐 들러 집사람이나 애들한테 핀잔을
듣기도했지요.
-어떻게해서 운동선수의 길을 걷게됐나요.
김촌장=휘문고보2학년때인 1933년 15세때였어요.
은사인 문곡 서상천선생의 권유로 문곡선생이 운영하시던
중앙체육연구소에 입문하면서 부터였어요. 여기서는 역도뿐 아니라 각종
기계체조도 가르쳤지요.
문곡선생은 이 연구소를 통해 조선 청소년들에게 심신을 단련시키고
여기서 배출된 청소년들로 하여금 민족운동의 기수가 되도록 한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계셨지요.
나는 문곡선생님의 영향을 많이받았어요. 열심히 운동을 했습니다.
더구나 그 당시 문곡 선생님이 건전한 정신을 기르려면 무엇보다 신체가
튼튼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나는 당시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결과
광복후 1948년 우리나라가 처음 올림픽에 참가한 제14회 런던올림픽에서
역도 미들급에서 동메달을 따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는 태극기를 달고
메달을 딴 최초의 일이지요.
나는 나에게 축복을 보내준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운동을해 런던 다음대회인 제15회 헬싱키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땄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운동에 심취하게 했나요.
70고령 "늙은선수"
김촌장=오로지 명예와 개인의 성취욕에서였지요. 나를 성원해주는
사람들에대해 보답을 해야한다는 생각과 하루가 다르게 향상되는 기록이
그렇게 뿌듯할수가 없었습니다. 불같은 의욕의 발산이라고나 할까요.
특히나 역도는 고독한 운동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이지요. 헬싱키올림픽
2년후인 1954년 제2회 마닐라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금메달을 땄습니다.
35세때의 일입니다.
(김촌장은 휘문고보를 거쳐 보성전문(현고려대전신)을 졸업한다음 모교인
휘문고와 해사 대한중석등에서 역도를 지도했다)
-본격적인 대표선수지도는 언제부터입니까.
김촌장=64년2월 민관식씨가 대한체육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대한체육회이사로 선임돼 대표선수훈련을 맡기 시작했습니다. 68년부터
76년까지 8년간 체육회사무총장을 지냈지요.
사무총장에서 퇴임한후 곧바로 태릉선수촌으로 부임,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고희가 넘도록 일선에서 지도자생활을 할수있다는 것은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니지요. 개인이 아무리 원한다해도 어디 그게 뜻대로 되는 일입니까.
비결이 있나요.
김촌장=나는 84년 LA올림픽때 한국선수단장으로 참가하면서 그것이
마지막 봉사가 될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로부터 어언 8년이란
세월이 흘렀군요.
훌쩍 떠나면야 그만이겠죠. 그러나 주위에서 떠나라고 하지 않으니까
70이 넘은 늙은이이지만 그동안의 오랜 선수지도경험이 아직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들 하나봐요. 한가지 다행인것은 이곳에서 훈련하는 젊은
선수들이 날로 잘따라주고 있는점입니다. 이곳의 남녀선수들이 한결같이
나를 "늙은 형 늙은오빠"로 취급,훈련상의 문제뿐아니라 개인의 자질구레한
일까지도 허심탄회하게 의논하곤 합니다.
-실례지만 체력은 자신있으십니까.
김촌장=주제넘는 얘기가 될지 모르지만 뛰고 달리는 일만 말고
웨이트트레이닝은 젊은 선수에 못지않은 자신이 있습니다. (김촌장은
선수들이 꾀를 부리고 훈련에 게으름을 피우면 웨이트트레이닝장에 불러
모아놓고 벤치프레스 70 짜리를 열번가량 들어올리며 각성을 촉구하기도
한다)
이 나이때까지 아파서 병원한번 찾은일없고 보약한번 입에 댄적이 없어요.
아침5시 기상에서부터 저녁10시 취침시까지 선수들과 똑 같이 활동합니다.
-평생을 냉엄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오셨기 때문에 승부없는 일상사는
싱겁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김촌장=그렇지 않아요. 늘 승부에 젖어있기 때문에 신경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피곤한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승부없는 홀가분한
생활을 할때면 그렇게 편할수가 없지요. 조용한 장소에서 음악을 들을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앞으로 꼭 하고싶은 일은-.
김촌장=지금까지 겪어온 일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대담=조덕동체육부장>
1919년1월생이니까 올해로 만73세가 넘은 김성집태릉선수촌장을 마주
대하고 받은 소감이다.
왕성한 혈기,젊은 선수못지 않은 당당한체구,우렁찬 목소리,거기다
메달후보쯤 되는 대표선수 개개인에 대한 신상명세까지 훤하게 머리에
꿰매놓고 있다. 그 나이에 그런 기억력,여간 부럽지않다.
세월의 흐름을 잡아놓고 사는 사람같다.
60년 가까운 세월을 오직 선수.임원으로 일관해온 초지일관의 체육인
김성집옹은 한국아마스포츠계의 산증인으로 지금도 태릉선수촌에서
선수들과함께 땀을 흘리고있는 늙은선수(?) 타고난 스포츠인생
-제25회 바르셀로나 하계올림픽이(7월25일 8월9일)4개월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또 바빠지게 됐네요.
김촌장=4월에 접어들면서 선수 임원들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태릉선수촌전체에 경고등이 켜진것 같은 비상시의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지요.
올림픽출전을 위한 개인종목의 선수선발은 거의가 끝났고 일부 구기종목만
아직 올림픽티켓 확보문제가 남아있어요. 금년1월7일부터 2백일 강훈에
들어가 현재 마지막 전술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88서울올림픽때 워낙 좋은 성적을 올렸기 때문에 바르셀로나올림픽을
앞두고 선수.임원들의 어깨가 그어느때 보다 무거워요.
나 개인으로도 체육인생의 "유종의미"를 거두고 싶은 심정이 들어서인지
전보다 더 조급해지는 느낌이에요.
-이번에도 좋은 성적을 거둘수 있을까요.
김촌장=88서울올림픽이후 대표선수의 3분의2가 물갈이 됐습니다.
올림픽이 4년마다 열리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시간의 여유가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도자들은 전혀 여유를 못느낍니다. 어려운집 제사
돌아올때의 "가난한 가장"의 심정과 흡사하지요. 온통 걱정입니다.
잘할수 있을까,전보다 약해지지않을까,온통 회의감만 들게되지요.
그렇기때문에 90년 북경아시안게임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바르셀로나준비에 들어간 것입니다. 선수들이 대거 신진으로 교체돼
작년까지만 해도 걱정이 태산같았는데 금년들어 기량이 크게 향상돼 다소
안심이 들게 됐습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88서울올림픽과 같은 12개의 금메달을 목표하고
있어요.
-지나친 의욕아닐까요. 일부에서는 88서울올림픽이후 한국의
엘리트스포츠가 주춤해졌다고 우려하는 소리가 높던데요.
김촌장=공교롭게 금메달목표가 서울올림픽때의 목표와 같아서
의도적인것같은 느낌이 드실것입니다. 전혀 의도적이 아닙니다. 그동안의
국제경기성적등을 면밀히 분석해 잡은 수치입니다. 거기다
스포츠강국이었던 구소련의 와해와 동구권의 약화도 우리에게 유리한
작용을 할것으로 보여집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7 8개정도를 헤아렸는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년에 걸쳐서 각종 세계대회에서 거둔 성적들을 놓고
볼때 훈련과정에서 조금만 노력을 더하면 3 4개 정도는 더 딸수 있는
것으로 기대가 돼 목표를 상향조정했지요.
유도의 경우가 가장 유망하다고 봅니다. 남자에서 2개,여자에서 2개를
기대해 봅니다. 이외에 레슬링 2개,베드민턴(남녀복식)2개,남자체조 역도
탁구(여자복식)복싱에서 각1개씩을 잡아놓고 있지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최고의 기대치입니다.
-요즘 선수들의 정신자세가 옛날 선수들보다 떨어진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김촌장=좀약해진것 같아요. 내가 운동하는 시절에는 자기가 알아서
했지요. 요즘도 열심히 하는 선수가 많지만 개중에는 자발적이라기 보다는
피동적으로 운동하는 선수도 더러 있어요.
운동이란 신체훈련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정신자세가 중요한
것이지요. 아무리 신체훈련이 잘 돼 있다해도 정신자세가 단단히 무장돼
있지않으면 승부세계에서는 상대편을 이기기가 어려워요.
-왜 그렇게 됐다고 보십니까.
김촌장=물질사회가 돼서 그런가봐요.
황금만능 풍조의 영향이 아닌가해요.
과거에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개인과 국가의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운동을 했는데 근래들어서는 명예보다는 물질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메달을 따서 물질의 보상을 받고난 다음이거나 또는 물질의
보상이 약속만되면 선수들의 의욕이 저하되는 경향을 보이지요.
이것이 어디 체육계 뿐이겠어요. 사회전체의 풍조이지요.
체육계라고해서 고고할수만은 없다고 봐요. 다시 강조하지만 요즘
선수라고 다 그런것은 아닙니다.
전보다 못지않게 아니 더 열심히 하는 선수들도 많이 있어요.
-김옹의 선수촌생활은 몇년이나 됐나요.
김촌장=76년부터니까,한16년됐군요. 이제는 태릉선수촌이 집보다 오히려
더 친숙한듯한 느낌마저 들어요. 그동안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개막을
앞두고 훈련이 막바지에 들어갈때면 1주일내내 선수촌에서 선수들과 숙식을
하고 일요일에만 집에 잠깐 들러 집사람이나 애들한테 핀잔을
듣기도했지요.
-어떻게해서 운동선수의 길을 걷게됐나요.
김촌장=휘문고보2학년때인 1933년 15세때였어요.
은사인 문곡 서상천선생의 권유로 문곡선생이 운영하시던
중앙체육연구소에 입문하면서 부터였어요. 여기서는 역도뿐 아니라 각종
기계체조도 가르쳤지요.
문곡선생은 이 연구소를 통해 조선 청소년들에게 심신을 단련시키고
여기서 배출된 청소년들로 하여금 민족운동의 기수가 되도록 한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계셨지요.
나는 문곡선생님의 영향을 많이받았어요. 열심히 운동을 했습니다.
더구나 그 당시 문곡 선생님이 건전한 정신을 기르려면 무엇보다 신체가
튼튼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나는 당시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결과
광복후 1948년 우리나라가 처음 올림픽에 참가한 제14회 런던올림픽에서
역도 미들급에서 동메달을 따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는 태극기를 달고
메달을 딴 최초의 일이지요.
나는 나에게 축복을 보내준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운동을해 런던 다음대회인 제15회 헬싱키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땄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운동에 심취하게 했나요.
70고령 "늙은선수"
김촌장=오로지 명예와 개인의 성취욕에서였지요. 나를 성원해주는
사람들에대해 보답을 해야한다는 생각과 하루가 다르게 향상되는 기록이
그렇게 뿌듯할수가 없었습니다. 불같은 의욕의 발산이라고나 할까요.
특히나 역도는 고독한 운동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이지요. 헬싱키올림픽
2년후인 1954년 제2회 마닐라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금메달을 땄습니다.
35세때의 일입니다.
(김촌장은 휘문고보를 거쳐 보성전문(현고려대전신)을 졸업한다음 모교인
휘문고와 해사 대한중석등에서 역도를 지도했다)
-본격적인 대표선수지도는 언제부터입니까.
김촌장=64년2월 민관식씨가 대한체육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대한체육회이사로 선임돼 대표선수훈련을 맡기 시작했습니다. 68년부터
76년까지 8년간 체육회사무총장을 지냈지요.
사무총장에서 퇴임한후 곧바로 태릉선수촌으로 부임,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고희가 넘도록 일선에서 지도자생활을 할수있다는 것은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니지요. 개인이 아무리 원한다해도 어디 그게 뜻대로 되는 일입니까.
비결이 있나요.
김촌장=나는 84년 LA올림픽때 한국선수단장으로 참가하면서 그것이
마지막 봉사가 될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로부터 어언 8년이란
세월이 흘렀군요.
훌쩍 떠나면야 그만이겠죠. 그러나 주위에서 떠나라고 하지 않으니까
70이 넘은 늙은이이지만 그동안의 오랜 선수지도경험이 아직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들 하나봐요. 한가지 다행인것은 이곳에서 훈련하는 젊은
선수들이 날로 잘따라주고 있는점입니다. 이곳의 남녀선수들이 한결같이
나를 "늙은 형 늙은오빠"로 취급,훈련상의 문제뿐아니라 개인의 자질구레한
일까지도 허심탄회하게 의논하곤 합니다.
-실례지만 체력은 자신있으십니까.
김촌장=주제넘는 얘기가 될지 모르지만 뛰고 달리는 일만 말고
웨이트트레이닝은 젊은 선수에 못지않은 자신이 있습니다. (김촌장은
선수들이 꾀를 부리고 훈련에 게으름을 피우면 웨이트트레이닝장에 불러
모아놓고 벤치프레스 70 짜리를 열번가량 들어올리며 각성을 촉구하기도
한다)
이 나이때까지 아파서 병원한번 찾은일없고 보약한번 입에 댄적이 없어요.
아침5시 기상에서부터 저녁10시 취침시까지 선수들과 똑 같이 활동합니다.
-평생을 냉엄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오셨기 때문에 승부없는 일상사는
싱겁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김촌장=그렇지 않아요. 늘 승부에 젖어있기 때문에 신경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피곤한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승부없는 홀가분한
생활을 할때면 그렇게 편할수가 없지요. 조용한 장소에서 음악을 들을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앞으로 꼭 하고싶은 일은-.
김촌장=지금까지 겪어온 일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대담=조덕동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