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는 권력집중형에서 권력분산형으로 가는 길이다. 노동자가 응분의
권리를 되찾은것 같은 민주화가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보람된
일이다. 상당한 대가를 치렀지만 이것은 거역할수 없는 역사의 발전이다.
이를 역유시키지 말고 지탱하며 진척시키는 것이 우리시대의 사명이다.
요즘 한창 시끄럽게 제기되고 있는 정경분리원칙의 확립도 이런 발전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3공때의 권력집중형 체제로 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정치가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한 정치의 경제화였다. 이것이
상당한 경제적 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권력집중체제의 경제는
정경유착의 그늘을 만들면서 독과점경제체제로 이어진 단면도 없지 않다.
그런 구조는 시장경제의 원동력인 경쟁을 제약하게 되어 경제침체에
연결될수 있다. 초기엔 반짝했던 권력집중형 공산권경제가 지금은 몰락한
사실이 이를 증거한다.
한국경제는 이제 컴퓨터 반도체 항공기산업에까지 참여하고 있을만큼
볼륨도 커지고 부문도 다양화돼있다. 시장개방으로 국경이 없는 경제에서
경쟁해야할 처지다. 이는 세계적 경기순환과 이노베이션에 신속한 대응을
절실하게 하는 요인이다. 권력집중형이 아닌 권력분산형체제로써만 이에
대응할수 있다. 경제가 정치에 끌려가는 것이 아닌 자주적 순발력의
경제가 필요한 것이다. 즉 정경분리원칙의 확립이다.
탈냉전시대에서 각국의 테마는 정치에서 경제로 옮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정치의 경제지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경제의
주역은 기업이며 정치는 기업에 최적의 환경을 뒷받침해주는 중대한 임무에
머무르면 된다. 사실 경쟁력을 좌우하는 외생변수로서의 정부역할은
막중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 각국에서 정치권이나 정부가 모든 것에
우선하여 경제를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기업과 정부의 각기 다른 임무는
정경분리원칙이 확립되어야만 효과적으로 수행될수 있다.
기업들은 그라운드의 선수들처럼 피나는 경쟁을 통해 기량을 마음껏
발휘해야 하고 정부는 룰을 공정하게 집행하여 경기를 순조롭게 진행시키는
심판의 역할을 맡는 것이 정경분리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선수가
시원찮다고 심판이 어느편의 경기에 뛰어들면 그 경기는 엉망이 될 것이고
선수가 심판의 판정에 불복하거나 스스로 심판역할을 하려고 해도 경기는
엄망이 될수 밖에 없다. 경제개발초기,그러니까 제기차기같은
단순시합에서나 선수와 심판을 함께 하는 일이 가능했을 뿐이다.
권력분산형이나 정경분리가 된다고 하여 각기의 분파권력이나
경제주체들이 따로따로 놀아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분산된
주체들이 자주적 위상속에서 얼마나 잘 협력하느냐가 국가경쟁력의 결정적
요인이다. 분파라면 언뜻 싸움을 떠올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지만 각기의
특성을 지닌 원자들이 독립적 화학물질인 분자를 구성하듯 권력분산은 가장
효과적 전체권력을 만드는 기본이다. 정경분리도 그와 같다.
전후 일본에선 기업들이 과거 봉건영주의 대역들처럼 경제부흥을
주도했다. 독자적인 관료조직이 이를 지원했다. 정치권이 관계와
경제계의 거중조정을 했다. 이러는 중에 정경유착도 있었지만 각기의
위상과 룰을 가지고 민.관.정이 교묘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이 일본의
경쟁력을 세계 제1로 만든 힘이었다.
한국은 지금 어떤가. 정경분리를 내세우면서 정부와 기업그룹간에 싸움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기업들은 불똥이 튈까봐 불안해 하고있다. 다른
경쟁국들이 경제주체들끼리 똘똘뭉쳐 경쟁력키우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판에 우리는 적전분열을 하고 있는 꼴이다.
분명한 것은 이래가지고는 세계경제전쟁에서 이길수 없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편파적 룰을 적용하여 기업들이 정부눈치를 잘 살피느냐,못나느냐에
따라 이해가 좌우되면 슘페터가 말한 기업가정신은 실종된다.
서로가 정경분리를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못한데에 사단이
있다. 권위나 체면에 매달리지 말고 국민 모두가 갈망하는 한국경제의
진운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스스로 잘잘못을 깨닫게될 것이다.
참된 정경분리를 확립하는 것이 모두가 바라는 것이며 한국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그렇게도 국운의 기로가 되는 중요한 한해라고 입을 모으던 92년도 이제
3분의1이 지나고 있다. 제발 더 이상 허송세월 하지말고 생산적으로 힘을
합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