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에디슨은 선천적인 저능아로 판정을 받아 국민학교에서 퇴학을
당해야만 했다. 둘 더하기 둘은 넷이 되는 이치를 선생님이 아무리
가르쳐도 그는 도무지 납득하지 못한 것이다. 그가 누릴수 있는 유일한
교육의 혜택은 엄마로 부터의 가정수업. 지하실에서 간단한 기계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고 틈틈이 신문배달을 하며 10대를 보냈다. 22세
되던해(1869)에 투표기록기를 발명,바보 에디슨의 생애는 발명왕
에디슨으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천재란 1%의 영감과 99%의 땀의 결정"이란 그의 표현이나 러시아 작가
체호프의 "천재는 노력의 동의어"란 말은 모두 천재와 바보를 같은 평면에
놓고 본 시각이다.
소규모의 동네공장으로부터 시작해서 세계적인 자동차메이커로 성장한
혼다자동차사(본전기연)의 창시자 혼다(본전 종일랑)씨도 학창시절에는
낙제생의 오명을 쓰고 다녔으며 사회에 진출한후에도 고집불통의 석두였던
모양. 세계적인 가전메이커 소니 창시자의 한사람인
이부카(정심대)명예회장은 학교낙제생 혼다씨야말로 "전후 일본이 낳은
천재기술자"라고 회상하고 있다.
산업의 기능이나 형태가 바뀌면서 낙제생들과 천재들의 위상이 뒤집혀가는
감이 있다. 10대초반에 영어단어를 수천자외우고 미적분의 공식을 척척
풀어낸 세기의 천재들이 사회에진출해서는 오금을 펴지못한 예를 많이
볼수있다. 반면 중.고교시절 낙제권에서만 맴돌던 문제아들이 만만찮은
기업인으로 성장,후발 천재성을 유감없이 과시하기도 한다. 무엇인가
잘못된게 아닌가하고 의아해 할수있으나 그 해답은 간단하다.
우리의 시대가 좌뇌시대로부터 우뇌시대로 변전하고 있기때문. 인간의
뇌세포를 그 기능면으로 분류하면 좌우로 나누어진다는것. 우뇌는 주로
상상력 판단력 집중력의 기능을 담당하고 좌뇌는 계산능력이나 암기력
언어중추등과 관련이 깊다는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산업화의 척도를 공장굴뚝의 수나 크기로 측정하던 이른바
"굴뚝산업시대"에는 좌뇌의 천재들이 기를 폈던것. 그러나 고도의
정보화산업이 펼쳐지면서 좌뇌의 기능은 대체로 컴퓨터에 빼앗겨 버리고
새시대는 바야흐로 우뇌의 천재들이 활보하는 시대. 입시점수를 한두점
더따내 세칭일류대학에 진학하는 "우등생"보다 깜짝놀랄 내아이디어를
"창조"해 내는 "낙제생"들이야말로 내시대의 주인공-.
시험성적이 한두점 떨어졌다고해서 인생을 포기할일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