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요한 숭실대총장(철학박사.66)은 오늘을 사는 몇안되는 지성의 양심으로
꼽힌다. 첫눈에도 꼬장꼬장한 선비임을 느끼게 하는 조총장은 문화를
존중하고 정신적 교육적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가 참다운
선진국이요,민주국가라고 강조한다.

정년퇴임(93년2월)을 앞두고 대학정상화의 조기정착을 위해 마지막 정열을
쏟고 있는 조총장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진리파지"정신이며 학생들이 하루빨리 대학으로 돌아와 배우는 일에
전념해 줄것을 당부했다.

-안녕하십니까. 매우 건강하신것 같습니다.

?조총장=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 노력해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신앙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미학연구에 평생을 바치셨는데 미학을 공부하게 된 특별한 동기라도
있는지요.

?조총장=누구나 다 그랬듯이 전공을 무엇으로 택할까를 놓고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교육학도 하고 싶었고 종교학이나 철학도 배우고 싶었어요.
그러나 예과(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대)에 다닐때 만난 수화
김환기화백(전서울대미대교수.72년 작고)의 권유로 철학을 전공하게
됐습니다. 한국 미학의 기둥이시던 고유섭선생께서 작고(44년)하시자 대를
이어보라고 김교수께서 간곡히 권하시더군.

-후회하신 적은 없었습니까.

?조총장=공부해보고 싶었던 학문중의 하나였으니 별로 후회해 본적은
없었지만 한가지만 파고들것을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가끔 들때가 있어요.
희랍 철학과 미학을 공부했는데 이 두가지를 동시에 이룩한 학자들도
더러는 있지만 내 경우는 두마리 토끼를 쫓다가 한마리도 잡지 못했다고나
할까..

-미학은 한마디로 말해 어떤 분야를 연구하는 학문입니까.

?조총장=미를 추구하고 예술이 갖고있는 철학적 배경과 사상을 연구하는
학문이지요. 무엇이 진이냐를 추구하는 것이 논리학이요,선에대한 탐구가
윤리학 아닙니까. 미학은 예술철학과 같은 장르로 볼수 있어요.

-미학을 알아야만 훌륭한 예술작품이 나올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조총장=운동선수가 생리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잘 뛸수 있고 음악학을
전공하지 않은 연주자일지라도 악기를 다룰수 있듯이 미학을 배우지 않고도
좋은 작품을 만들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학문적 밑바탕이 있을때 완벽한 예술작품이 나올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 예술이 철학과 사상성이 빈약하다는 비판을 받고있는 것도 모두
학문적 밑바탕이 없는데서 연유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화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있습니다. 우리 대학의 현실에
대해 어떻게 보고계십니까.

?조총장="오늘날 우리대학이 겪고있는 혼란의 뿌리는 유신정권에서 찾을수
있습니다. 유신헌법이 선포되자 학생들이 이를 반대하면서 거리로 뛰쳐
나왔어요.

당시 교수들은 정부의 직.간접적인 강압에의해 학생들을 설득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교수들의 연구실은 문제학생들을 호출,설득하는 면담장이 됐고 데모를
막는 역할이 교수들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중의 하나였습니다. 데모를
잘 막고 정부지시에 잘 따르는 교수들이 출세했으니까..

그러니 교수들이 학생들 눈에는 정부의 시녀로 밖에 더 비쳤겠어요.

이때부터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교육의
장으로서의 기능도 상실하게 됐고요.

총장실이 적과 대치하고 있는 일선의 지휘초소 같아요. 학생들이 언제
점거할지 몰라 중요한 서류는 총장실에 둘수도 없어요.

그러나 점차 나아지고 있습니다. 89년에는 학교가 그야말로
무법천지였었습니다. 올해는 안정되지 않나 하고 기대를 했었습니다만..

내년엔 아마 정상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이같은 현상들은 민주화로 가기위해 반드시 겪어야할 과정이라고
보시는지.

?조총장=오늘날 우리 대학의 문제는 전체주의적 통치방식에서 나온
부산물이라고 볼수 있어요.

당시 지성인들이 가장 염려했던것은 저렇게 강압적으로 나가다가는
학생들을 모두 극단분자로 몰겠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이같은 염려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중국이나 필리핀 태국등 아시아 주변국가들을 봐도 민주화 과정이 참으로
험난하고 길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를 최소화 최단기화 할수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조총장=서구국가들이 1백 2백년에 걸쳐 이룩했던 근대화를 단 20 30년에
달성한 끈기와 지혜를 가진 국민인만큼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에게,국민은 정치가에게,노동자는 기업가에게
책임이 있다고 서로들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데 이럴때가 아니예요.

2년전부터 천주교에서 벌이고있는 "내탓이오"라는 운동이 시민운동으로
확산돼야 합니다.

문화국민으로서의 긍지를 잃지말고 이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한다면
민주화를 위한 과정이 얼마든지 단축될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어떻게 사는것이 애국 애족하는 지혜로운 삶인지요.

?조총장=제3공화국 초기에 "소비가 미덕인 사회"가 곧 온다면서 국민들의
가치관을 온통 뒤죽 박죽으로 만들어 놨어요.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위한
것이라고들 합디다만 한심한 구호였어요. 이로인해 과소비 풍조가
만연,국민소득 6천달러수준의 국민들이 2만달러가 넘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씀씀이가 헤프다는 소리를 듣지 않습니까.

그 이후 이를 바로잡으려는 지도자가 없었어요. 마음대로 쓰고 마음대로
노는 것이 잘사는 것은 아닙니다. 분수를 알고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개인은 가난해도 사회나 국가가 부유한 나라가 잘사는 나라입니다.
최근 소비절약운동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퍽 다행스런 일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정치 경제에 너무나 큰 비중을 두어왔어요. 그러다보니
정신적인것,사회 문화적인 면은 등한히 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문화를 존중하는 사회,도덕적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를 하루빨리 건설해야
합니다.

해방직후부터 교육의 목표를 "홍익인간"에 둬왔지만 인간교육이 이토록
안된 나라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한집 걸러 교회가 있고 불교신도가 1천만명에 달한다고 하나 종교적
도덕적인 힘이 이처럼 미약한 나라도 없을 겁니다.

-5공초기에 해직당하는등 이른바 시국교수로 많은 고초를 겪으셨는데 당시
가장 괴로웠던 일은.

?조총장=나는 원래 보수적인 사람인데 해직을 당하고는 처음엔 어리둥절
했었습니다. 주위 친구들이 격려를 해주고 또 집사람이 용기를 잃지않게
해줘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3년 반만에 복직했는데 85년께라고 생각됩니다. 큰애가 석사장교 시험을
봤어요. 합격자 발표명단에 올라있는 이름이 사인펜으로 지워져 있더군요.
나때문이었습니다.

가족들 보기가 민망했고 특히 큰아이에게 미안했었습니다. 이때 제일
가슴아팠어요.

-무슨일로 해직당하셨습니까.

?조총장=80년 4월 서울소재 7개대학교수 1백32명이 학원자율화 선언을
했어요. 또 5월 민주화를 촉구한 "지식인 1백3인선언"에 연루돼 쫓겨나게
됐습니다.

대학교수 86명이 지금의 경찰청 자리인 당시 치안본부 분실로 잡혀갔는데
며칠간 취조를 하더니만 자진사표를 쓰고 나가라고 하더군.. 매는
안맞았어요.

-요즘 대학경영이 어렵다는데.

?조총장=모든 대학들이 어려움을 겪고있습니다. 1백41개(교육대학
포함)4년제 대학가운데 75%가 사립대입니다. 국립대학은 연간예산의 45%를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지만 사립대학의 경우 2%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그것도 1%에서 최근에 2%로 늘어났어요.

대학이 정상화 되기 위해서는 대학의 재정이 튼튼해야 합니다.
사립대학이라 할지라도 정부가 지원을 해줘야 해요. 또 기업가들이 대학에
투자하고 기증할수 있도록 갖가지 혜택과 제도가 마련돼야 해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어디 대학만을 위한 일입니까. 학생들이 학교재정을
돕겠다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만 크게
잘못된 일이지요. 기업가가 대학에 투자하려는 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봐서는 안됩니다.

대학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지원이 시급해요. 지원은 안하고
교육만 탓할것이 아니라 국립대는 80%이상을,사립대학도 45 50%를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봅니다. 일본의 대학들은 등록금 비중이
23%에 지나지 않습니다.

-학생들의 대학경영 참여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조총장=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이 대학예산의 75 80%에 달하고 있으니
학생이 주체라는 생각에서 그러한 요구가 나오고 있는지 모르지만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같은 요구는 일부운동권의 주장입니다. 급진적인 생각을
가진 소위 운동권이라 불리는 학생은 3%에 불과해요. 나머지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합니다. 도서관마다 공부하는 학생들로 빽빽하지요. 이들은
단지 침묵하고 있을 뿐이지요. 침묵이 금이지만은 아닐텐데..

-어려움을 겪고있는 대학의 재정난을 돕기위해서 기여입학제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조총장=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반대입니다. 공정한 입학제도가 무너지고
돈이면 다 된다는 잘못된 생각들이 만연될수 있기때문이지요. 또
고등학생들이 공부를 안하는 풍조가 생길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대학이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고 대학에 떨어진 학생들이 해외로 마구 몰려나가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때 기여입학제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북통일의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북출신으로 철학을
전공하신 총장께서는 남북간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조총장=정신적으로 와해된 상태에서는 통일이 어렵다고 봅니다. 지금
남쪽에서는 경제력을 바탕으로,북에서는 조직적인 대남 전술 전략을 통해
서로들 접근하고 있지만 어느 한쪽으로의 흡수 통합은 당분간 어렵다고
봐요. 정치위주 경제위주의 정책만으로는 통일이 요원하다는 말입니다.

이에따라 우리 숭실대학에서는 지난해 "통일정책대학원"을
설립,이데올로기 문제뿐 아니라 농업 공업 교육 지리 전기 경제등 전분야에
걸쳐 북한문제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정년퇴임후 계획은.

?조총장=37년간 숭실대학에서 봉직하면서 해직됐던 3년 반과 총장직을
맡은 3년 반을 제외한 30년간 강단에 섰습니다. 강의 노트가 리어카
한대분은 충분히 될 것입니다. 이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할 계획입니다.
나머지 일들은 그때가서 생각해 봐야지요.

-오늘의 혼란기를 살고있는 젊은이들에게 하고싶은 말씀은.

?조총장=나는 학생들 앞에 설때마다 인도의 지도자 간디가 외쳤던 "사치아
그라하"(진리파지)의 정신을 이야기 하지요.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진리만은 고수하겠다는 "진리파지"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또한 학생운동도 이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정당한
주장이라도 폭력의 방법으로는 설득력을 잃게 마련이지요. 학생운동은
순수해야 합니다. 정치화 폭력화해서는 안돼요.

농촌문제를 연구한다든지,환경오염이나 주택문제 농약남용문제등 지금
학생들이 참여해야할 일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열심히 자기 수련을
하고 실력을 쌓는 길이 자기를 위하고 또 국가를 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대담=문중식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