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조인골간 `김종필-오히라메모' 진상 밝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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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5년 한일국교정상화협정의 토대가 됐던 이른바 `김종필-오히라메
모''등 당시 비밀교섭의 진상이 밝혀졌다.
동아일보사가 입수한 61년10월부터 66년6월까지의 비밀외교문서 내용에
따르면 한.일회담의 막후주역이었던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씨(현 민자
당최고위원)는 오히라아사요시 일본외상과의 협상에서 대일청구권 문제
독도문제등에 불분명한 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측 교섭대표들은 일본측에 " 한국의 군정기간동안 교섭을 마무리
해야지 민정이양이 되면 시끄럽다"고 독촉하는등 졸속 굴욕적 언사도 했
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62년11월12일 `김-오히라 메모''를 작성하면서 원래 한국측이 주
장한 순청구권명목 7억달러(62년3월 최덕신외무장관이 고사카일본외상에
게 제시한 금액)에서 액수는 물론 명목에서도 크게 물러나 무상원조 3억
달러 유상원조 2억달러 민간상업차관 1억달러''로 타결지은 것으로 밝혀졌
다. 또 오히라외상이 ''독립축하금 경제원조''등의 명목을 제시하는데도
명확한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않아 의혹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모''등 당시 비밀교섭의 진상이 밝혀졌다.
동아일보사가 입수한 61년10월부터 66년6월까지의 비밀외교문서 내용에
따르면 한.일회담의 막후주역이었던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씨(현 민자
당최고위원)는 오히라아사요시 일본외상과의 협상에서 대일청구권 문제
독도문제등에 불분명한 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측 교섭대표들은 일본측에 " 한국의 군정기간동안 교섭을 마무리
해야지 민정이양이 되면 시끄럽다"고 독촉하는등 졸속 굴욕적 언사도 했
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62년11월12일 `김-오히라 메모''를 작성하면서 원래 한국측이 주
장한 순청구권명목 7억달러(62년3월 최덕신외무장관이 고사카일본외상에
게 제시한 금액)에서 액수는 물론 명목에서도 크게 물러나 무상원조 3억
달러 유상원조 2억달러 민간상업차관 1억달러''로 타결지은 것으로 밝혀졌
다. 또 오히라외상이 ''독립축하금 경제원조''등의 명목을 제시하는데도
명확한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않아 의혹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