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대통령의 민자당적이탈과 중립내각구성발표는 주로 공정한
대선관리를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헌정사상 초유의 이 이변이 각부문에
미칠 파장은 비단 선거라는 정치행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행정의
수반인 대통령이 정치적 집권세력인 여당의 당적을 떠남으로써 당정이
공유하다시피한 행정에 어떤 파문을 일으킬까 하는 점이 주목해야 할
상황으로 떠오른 것이다.

두축으로 버티어오던 힘에서 한축이 빠저나가면 과도적으로는 공백으로
인한 구심의 동요,즉 행정체계의 흔들림을 예상할수 있다. 당정간의
협조로 이루어지던 예산안처리 각종입법 주요경제정책결정등이 표류할
가능성마저 있다. 국정의 수행능력이 당정이 분리됨으로써 반감될 소지를
배제할수 없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각급관리들이 임기가 얼마 안남은
현행정부보다도 차기집권유력자를 음으로 양으로 따르게되면 행정혼란은 더
가중될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립내각구성은 종래의 행정고질을
혁파할 기회가 될수도 있다. 대통령이 집권당 당적을 떠남으로써 예상되는
우려할 사태,그것까지를 항구적으로 차단할수 있는 중립적이고 현대적인
행정체계를 이룩할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이다. 공정한 선거관리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행정관리체제를 세워나가야 한다는데 더
포괄적 의미가 있다.

우리의 행정이 기왕에도 정치논리에 흐르지 않고 부편부당하고
중립적이었으면 구태여 이번과 같은 중립내각구상이라는 응급처방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관권선거 하나만 해도 중립적 행정체제에선 상상할수 없는
일이다. 물론 행정이 집권정치세력이 내세운 정책을 수행하게 되는
책임정치를 부인할수는 없다. 하지만 집권세력의 재집권이나 정치세력의
행정이권화를 돕는 것이 책임정치라고 할수없다. 행정이 특정정당의
정치에 소속되어서도,또한 거기에 봉사하는 것을 능사로 삼아서도 안된다.
지금까지 그래왔기 때문에 정치발전을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가 내각책임제때 정국은 혼란해도 중립적 직업관료들이 나라를
지켰다. 일본도 정치는 혼란해도 애국심이 강한 전문관료들이 국정의
근간을 이끌고 있다. 미국의 직업관료는 정치성 행위에는 손도 안댄다.
우리의 각급관료들도 정치를 바라보지 말고 국민을 바라보면서 나라를 지킬
때가 왔다. 선거중립내각뿐 아니라 행정중립내각의 기틀을 다질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