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사설(26일자)>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사다리가 있는것은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서다. 조심스럽게 힘들여 한칸
한칸 오르다보면 높은 곳에 다다른다.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은 모든 사람의
꿈이다. 향상이 사다리의 목적이다. 집을 지을 때도 으레 사다리가
이용되었다. 집짓는 것은 지붕을 마무리함으로써 끝난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그 일을 한다. 사다리는 향상의 도구이며 완성의 도구이기도 하다.
소방수들이 소방차 위로 뻗어 있는 사다리에서 불을 끄는것을 보면 수습의
도구이기도 하다.
요즘은 사다리가 많이 사라졌다. 더 편리한 것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치만은 불변이다.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를 안나오고는
대학에 갈수 없는것이 사다리의 이치이다. 기술을 익히지 않고는 상품을
만들수 없는 것도 같은 얘기다. 저축하지 않고는 집을 장만할수 없는것도
마찬가지다. 물리학적인 단적인 예로는 거리를 좁히는 하나 하나의 경과가
없고는 비약이란 있을수 없는 것이다.
이치가 이런데도 우리사회엔 겁없이 한꺼번에 꼭대기에 오르려는 높이뛰기
선수들이 많다. 벼락부자 벼락감투를 노리는 무리들이 그득하다. 그러다
정말 벼락을 맞는 꼴도 빈번히 보아왔다. 피나는 노력을 쌓은 끝에 이룩한
높이뛰기 세계기록이 고작 2 를 조금 넘는 것인데 "벼락족"들은 사다리
없이 까맣게 높이 오르려니 벼락을 맞을수 밖에 없다. 이것이 개인으로
끝나면 그래도 탈이 적은데 나라 전체가 벼락맞게 되는것은 결코 좌시할수
없는 문제다.
단지 막강한 배경만으로 초고속성장을 했다고 의심받는 기업들이 많았다.
지금도 어떤 주택건설업체가 그런 의혹에 휩싸여 세상이 수근거린다. 서류
몇장 떼는 것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각종 투기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재주가 좋아 그렇게 돈을 번다고 한발 늦춰 봐준다고 해도 이것이 착실하게
사다리 한칸한칸을 오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낙담하여
성실함을 발길로 걷어차게 하고,급기야는 너도나도 돈봉투 싸들고 줄잡기에
나서게 만든다면 이는 사회가 통째로 썩는 징조다.
정치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과잉관심은 분명 정치비정상에 원인이
있겠지만 이를 틈타 정치적 벼락출세를 하려는 사람들이 우글대는 것도
오히려 정치를 망치고 있다. 각종 선거철만 되면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는 격으로 근거없는 후보들이 무수히 나타나 유권자들을
혼란시킨다. 돈만 잘쓰면,어떤 세력의 후원만 얻으면,거짓공약을 잘
늘어놓기만 하면 일약 선량이 된다는 허황된 꿈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뽑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그후에 어떤 짓을 하는지를 뻔히 보아온 터다.
이번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사람수가 벌써 10명을 헤아린다.
오랫동안 나무랄수 없는 기반을 닦은 후보들도 있지만 아무런 근본도 쌓지
못한 사람들이 웃도리 걸치듯 주섬주섬 나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욕일수
있다. 사다리를 성실히 오른 사람들이 나와야 유권자가 이를 평가하고
본받을수 있다. 대통령후보가 요행을 바란다면 애당초 그른 것이다.
투표함이 야바위꾼의 요술상자인가. 유권자가 피에로인가.
벼락부자나 벼락감투를 노리는 풍조는 정치와 행정의 무소불위에도 책임이
있다. 어떤 사람은 분명히 기준을 갖췄는데도 이핑계 저핑계로 일이
성사되지 않는다. 그런데 힘을 업고있는 사람에겐 얼토당토 않게 규정을
바꿔가면서 까지 일을 성사시켜준다. 요행히 상품화되어 갑자기 돈더미
위에 올라선다. 각종 공직자들이 열심히,그리고 차근차근히 사다리를
오르고 있는데 그 분야엔 문외한인 사람이 바람처럼 날아와 장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공천만 받으면 떼어논 당상처럼 당선되는 경우도
흔하다. 룰이 아니라 광의의 권부가 지배하여 벼락부자 벼락감투가
나온다.
어떤 기업,어떤 공직자,어떤 정치가가 우뚝 솟는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단 자기능력으로 그래야 한다. 권부의 힘으로,돈의
힘으로,속이는 힘으로,남을 짓밟는 힘으로 우뚝 솟는 것은 부당하며
바벨탑의 허망된 꿈처럼 언어를 혼란시켜 사회를 마비시킨다. 힘없는
사람들은 기회가 봉쇄되어 이를 트려고 노상 돈봉투를 싸들고 줄을 찾아
다녀야하는 이 풍조를 그대로 두고서는 이 나라에 미래가 없다.
국감이 끝나고 대선운동이 본격화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업보다도 여기에 매달리는 풍조는 사다리의 효용보다는 괴력이 훨씬
빠르고 확실한 길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노력이 등외처럼 취급되는
사회,사다리보다 한꺼번에 오르는 길이 있는 사회가 하루속히 정돈돼야
한다. 소방수들이 사다리 위에서 불을 끄듯이 높은 곳에서부터 수습되어야
한다.
한칸 오르다보면 높은 곳에 다다른다.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은 모든 사람의
꿈이다. 향상이 사다리의 목적이다. 집을 지을 때도 으레 사다리가
이용되었다. 집짓는 것은 지붕을 마무리함으로써 끝난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그 일을 한다. 사다리는 향상의 도구이며 완성의 도구이기도 하다.
소방수들이 소방차 위로 뻗어 있는 사다리에서 불을 끄는것을 보면 수습의
도구이기도 하다.
요즘은 사다리가 많이 사라졌다. 더 편리한 것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치만은 불변이다.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를 안나오고는
대학에 갈수 없는것이 사다리의 이치이다. 기술을 익히지 않고는 상품을
만들수 없는 것도 같은 얘기다. 저축하지 않고는 집을 장만할수 없는것도
마찬가지다. 물리학적인 단적인 예로는 거리를 좁히는 하나 하나의 경과가
없고는 비약이란 있을수 없는 것이다.
이치가 이런데도 우리사회엔 겁없이 한꺼번에 꼭대기에 오르려는 높이뛰기
선수들이 많다. 벼락부자 벼락감투를 노리는 무리들이 그득하다. 그러다
정말 벼락을 맞는 꼴도 빈번히 보아왔다. 피나는 노력을 쌓은 끝에 이룩한
높이뛰기 세계기록이 고작 2 를 조금 넘는 것인데 "벼락족"들은 사다리
없이 까맣게 높이 오르려니 벼락을 맞을수 밖에 없다. 이것이 개인으로
끝나면 그래도 탈이 적은데 나라 전체가 벼락맞게 되는것은 결코 좌시할수
없는 문제다.
단지 막강한 배경만으로 초고속성장을 했다고 의심받는 기업들이 많았다.
지금도 어떤 주택건설업체가 그런 의혹에 휩싸여 세상이 수근거린다. 서류
몇장 떼는 것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각종 투기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재주가 좋아 그렇게 돈을 번다고 한발 늦춰 봐준다고 해도 이것이 착실하게
사다리 한칸한칸을 오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낙담하여
성실함을 발길로 걷어차게 하고,급기야는 너도나도 돈봉투 싸들고 줄잡기에
나서게 만든다면 이는 사회가 통째로 썩는 징조다.
정치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과잉관심은 분명 정치비정상에 원인이
있겠지만 이를 틈타 정치적 벼락출세를 하려는 사람들이 우글대는 것도
오히려 정치를 망치고 있다. 각종 선거철만 되면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는 격으로 근거없는 후보들이 무수히 나타나 유권자들을
혼란시킨다. 돈만 잘쓰면,어떤 세력의 후원만 얻으면,거짓공약을 잘
늘어놓기만 하면 일약 선량이 된다는 허황된 꿈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뽑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그후에 어떤 짓을 하는지를 뻔히 보아온 터다.
이번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사람수가 벌써 10명을 헤아린다.
오랫동안 나무랄수 없는 기반을 닦은 후보들도 있지만 아무런 근본도 쌓지
못한 사람들이 웃도리 걸치듯 주섬주섬 나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욕일수
있다. 사다리를 성실히 오른 사람들이 나와야 유권자가 이를 평가하고
본받을수 있다. 대통령후보가 요행을 바란다면 애당초 그른 것이다.
투표함이 야바위꾼의 요술상자인가. 유권자가 피에로인가.
벼락부자나 벼락감투를 노리는 풍조는 정치와 행정의 무소불위에도 책임이
있다. 어떤 사람은 분명히 기준을 갖췄는데도 이핑계 저핑계로 일이
성사되지 않는다. 그런데 힘을 업고있는 사람에겐 얼토당토 않게 규정을
바꿔가면서 까지 일을 성사시켜준다. 요행히 상품화되어 갑자기 돈더미
위에 올라선다. 각종 공직자들이 열심히,그리고 차근차근히 사다리를
오르고 있는데 그 분야엔 문외한인 사람이 바람처럼 날아와 장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공천만 받으면 떼어논 당상처럼 당선되는 경우도
흔하다. 룰이 아니라 광의의 권부가 지배하여 벼락부자 벼락감투가
나온다.
어떤 기업,어떤 공직자,어떤 정치가가 우뚝 솟는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단 자기능력으로 그래야 한다. 권부의 힘으로,돈의
힘으로,속이는 힘으로,남을 짓밟는 힘으로 우뚝 솟는 것은 부당하며
바벨탑의 허망된 꿈처럼 언어를 혼란시켜 사회를 마비시킨다. 힘없는
사람들은 기회가 봉쇄되어 이를 트려고 노상 돈봉투를 싸들고 줄을 찾아
다녀야하는 이 풍조를 그대로 두고서는 이 나라에 미래가 없다.
국감이 끝나고 대선운동이 본격화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업보다도 여기에 매달리는 풍조는 사다리의 효용보다는 괴력이 훨씬
빠르고 확실한 길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노력이 등외처럼 취급되는
사회,사다리보다 한꺼번에 오르는 길이 있는 사회가 하루속히 정돈돼야
한다. 소방수들이 사다리 위에서 불을 끄듯이 높은 곳에서부터 수습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