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동락] 신좌성 보우사 대표 .. 희문애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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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모임의 명칭은 휘문애교동지회라고 한다. 8.15해방후 정치적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었던 시절 좌익세력이 강하기로 이름났던 모교를 수호하기
위한 우익진영 학우들의 조직이다.
해방 다음해 상반기 좌익세력에 의해 감행된 "국대안반대동맹휴학"바람은
전국학원가를 휩쓸었고 휘문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아래서 각
우익단체에 산재하여 활동하던 동지들이 우선 학교부터 살리고 보자는
뜻에서 교외활동을 중지하고 교내로 한데 뭉쳤던 것이다.
좌익학생의 학교방화를 막기위해 숙직을 서기도 하고,고문이던
이선도소령으로부터 권총을 빌려 대응하기도 했다.
당시 1학년부터 5학년까지 전학년에 걸쳐 72명의 회원이 결속되면서
학교운영을 완전 장악했다.
정부수립후에는 학도호국단의 주도적역할을 담당하였고 6.25동란때는
일선소대장을 필두로 군복무 학도경찰등 여러분야에서 유감없이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애석한일은 6.25동란초 서울에서 좌익계제자들에 의해
학살당하거나 납북된 몇분 은사님과 동지들의 생사를 모르는 일이다.
휴전후 많은 세월이 지나서야 애교동지들은 서로의 소식을 알게 되었고
77년6월부터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있다. 면면을 살펴보면 스님이 된
김경만선배,교수로는 민경일완(단국대) 안광식(이화여대)선배와
장영준(관동대) 이근희(한양대) 이희철(인하대) 이용훈(단국대)
장충식(단국대총장)후배등이 있다.
이밖에 고문이던 고이선도소령의 동생
이선홍(영등포기계관리공단),아나운서로 활약하던 임택근,공군에
입대했다가 지금도 비행기와 인연을 맺고있는 이원갑사장(한국공항)등
32명이 지금도 피로 맺어진 우정을 나누고 있다.
우리들은 이모임을 중심으로 뭉쳐 첫째 좌익계보다 체력이 약했는데도
투철한 사상과 단결력을 발휘한점과 둘째 당시 면학의 여건에서도 박사가
8명이나 생겨났고 셋째 10대부터 국운을 걱정하며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권력에 아부하거나 재력에 눈이 어두운자가 한사람도 없다는 점이 더욱
떳떳하다.
모든 회원이 회갑을 넘기고 황혼길에 접어들었으나 젊은이 못지않은
정열과 학창시절의 패기를 갖고있다. 우리들은 평범하고 조용한 시민으로
살아가면서 단 두사람이 남을 먼 훗날까지 이모임을 이어갈 것이다
극심한 혼란을 겪었던 시절 좌익세력이 강하기로 이름났던 모교를 수호하기
위한 우익진영 학우들의 조직이다.
해방 다음해 상반기 좌익세력에 의해 감행된 "국대안반대동맹휴학"바람은
전국학원가를 휩쓸었고 휘문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아래서 각
우익단체에 산재하여 활동하던 동지들이 우선 학교부터 살리고 보자는
뜻에서 교외활동을 중지하고 교내로 한데 뭉쳤던 것이다.
좌익학생의 학교방화를 막기위해 숙직을 서기도 하고,고문이던
이선도소령으로부터 권총을 빌려 대응하기도 했다.
당시 1학년부터 5학년까지 전학년에 걸쳐 72명의 회원이 결속되면서
학교운영을 완전 장악했다.
정부수립후에는 학도호국단의 주도적역할을 담당하였고 6.25동란때는
일선소대장을 필두로 군복무 학도경찰등 여러분야에서 유감없이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애석한일은 6.25동란초 서울에서 좌익계제자들에 의해
학살당하거나 납북된 몇분 은사님과 동지들의 생사를 모르는 일이다.
휴전후 많은 세월이 지나서야 애교동지들은 서로의 소식을 알게 되었고
77년6월부터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있다. 면면을 살펴보면 스님이 된
김경만선배,교수로는 민경일완(단국대) 안광식(이화여대)선배와
장영준(관동대) 이근희(한양대) 이희철(인하대) 이용훈(단국대)
장충식(단국대총장)후배등이 있다.
이밖에 고문이던 고이선도소령의 동생
이선홍(영등포기계관리공단),아나운서로 활약하던 임택근,공군에
입대했다가 지금도 비행기와 인연을 맺고있는 이원갑사장(한국공항)등
32명이 지금도 피로 맺어진 우정을 나누고 있다.
우리들은 이모임을 중심으로 뭉쳐 첫째 좌익계보다 체력이 약했는데도
투철한 사상과 단결력을 발휘한점과 둘째 당시 면학의 여건에서도 박사가
8명이나 생겨났고 셋째 10대부터 국운을 걱정하며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권력에 아부하거나 재력에 눈이 어두운자가 한사람도 없다는 점이 더욱
떳떳하다.
모든 회원이 회갑을 넘기고 황혼길에 접어들었으나 젊은이 못지않은
정열과 학창시절의 패기를 갖고있다. 우리들은 평범하고 조용한 시민으로
살아가면서 단 두사람이 남을 먼 훗날까지 이모임을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