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가 찾아온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방 밖의 정원에
땅거미가 깔리고 있었다.

시즈부인이 다카하시를 안내하여 내실로 들어와서 아리무라에게 인사를
시켰다. 그리고 그녀는 얼른 주방으로 가서 술과 안주를 날라왔다.
마쓰코도 어머니를 거들어 그것을 탁자에 차렸다.

시즈부인은 방에 불을 켜고,다실과의 사이에 있는 후수마를 닫았다.
정원이 내다보이는 복도 쪽의 후수마도 닫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것까지 닫으면 너무 더울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녀는 탁자의 한쪽 가에 꿇어앉아서 손수 주전자를 들어 두
사람의 잔에 술을 따랐다.

"누님은 한잔 안하십니까?"
시즈부인 앞에는 잔이 없자,아리무라가 말했다.

그말에 다카하시는 힐끗힐끗 두 사람을 바라본다. 누님이라니,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 싶은 모양이다. 한 열흘 전에 아리무라가 문상을 와서
알게 되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난 나중에 하겠어요. 어서 들어요"
시즈부인이 말하자,다카하시가 불쑥 묻는다.

"두 분이 어떻게 되는 사인데요?" "그저 누님,동생,하기로 했죠"
시즈부인이 좀 쑥스러운 듯한 웃음을 떠올리며 대답한다.

"하하,그래요?"
열흘 전에 처음 만났다면서 어떻게 벌써 그렇게 됐는지 신기하다는 듯이
다카하시도 싱긋 웃는다.

"자,그럼 둘이서 술을 마시면서 얘길 나누세요"
자기는 자리를 비키는 게 옳겠다 싶어서 시즈부인은 조용히 일어선다.

두 사람은 대작(대작)을 하면서 처음에는 인사치레의 말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화제가 사이고다카모리로 옮겨갔다.

시즈부인의 말에 의하면 사이고다카모리의 지시에 따라서 아리무라가 에도
번저로 나온 것 같았고,또 자기도 사이고를 잘 아는 터이라,다카하시가
먼저, "참,사이고다카모리상은 사쓰마로 돌아가서 무사히 잘 계시겠죠?"
하고 안부를 물었다.

"시마나가시가 됐습니다" "뭐요? 시마나가시가 되다니. 고향에
돌아갔는데,어쩌다가 그렇게 됐조?"
다카하시는 뜻밖이어서 약간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리무라는 사이고가 시마나가시를 당하게 된 사연을 자초지종
늘어놓았다. 다 듣고나더니 다카하시는, "사쓰마번도 이젠 믿을 수가
없군요" 하고 한숨을 쉬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