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실 앞의 복도에 이르자,시즈부인은 쟁반을 마룻바닥에 놓고
다소곳이 굻어 앉으며, "안주를 더 가지고 왔는데요. 술은 아직
남았나요?" 하고 물었다.

"예,아직 있어요"
아리무라가 대답했다.

"내가 방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예,들어오세요"
이번에는 다카하시가 대답한다.

방으로 들어가 안주 접시를 탁자에 내려놓고 나서 시즈부인은 술주전자의
뚜껑을 열어본다.

"술이 다돼 가는군요. 더 가져와야겠어요" 하고는 다시 주방으로 가서
술병과 잔 한개,그리고 젓가락을 가져왔다.

주전자에 술을 가득 채우고나서, "나도 같이 한잔해도 될까요?" 하고
묻는다.

"예,어서 앉으세요"
다카하시가 말한다.

시즈부인은 탁자의 한쪽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 가지고온 자기 잔에
자작을 한다. 그리고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어서 얘기들을
계속하세요. 내가 들어도 괜찮은 거죠? 거북하다면 나가드리고요" 하고
말한다.

그러자 아리무라가 얼른, "괜찮아요. 누님,앉아계세요" 하고는
다카하시를 향해 대화를 재개한다.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말씀해 보시죠" "글쎄요,그런 구체적인
문제는 당장 여기서 우리 둘이 논의할 성질의 것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렇기도 하죠. 초대면의 자리에서 그런 깊숙한 얘기까지 나눈다는 건 좀
뭐하지만.. 그래도 기왕에 얘기가 거기까지 이르렀으니,그저 우리의
사적인 의견을 교환해 보는 것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그럼 먼저
아리무라상이 의견을 얘기해 보세요.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요?" "제
생각에는 우리 사쓰마의 동지들과 에도의 지사들이 한꺼번에 탈번을 해서
가을에는 거사를 도모하는 게 좋겠어요. 늦추면 늦출수록 막부의 횡포가
심해지고,우리 쪽의 피해만 늘어난단 말입니다. 이이나오스케를 하루 빨리
해치워야 돼요" "그렇기는 하지만,그러나."
다카하시는 잠시 말을 멈추고,잔을 들어 쭉 들이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