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쓰마의 젊은 지사들이 자기네끼리만 거사를 하려는 게 아니라,미도의
지사들과 공모를 하여 이이나오스케를 해치웠으면 한다는 말을 듣고 세키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우리 미도번은 사정이
사쓰마와는 다르죠" 하고 입을 뗐다.

사쓰마와는 달리 미도번은 많은 중신들이 목숨을 잃었고,다이묘인
도쿠가와 나리아키까지 영구 칩거의 처분을 당하여 유폐생활을 하고있기
때문에 섣불리 하급 사무라이들 마음대로 거사를 도모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자칫하면 오히려 다이묘의 목숨까지 잃게 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면서, "위로부터 지시가 있어야 거사를 도모할
수가 있어요. 다이묘께서 은밀히 명령만 내리신다면 당장 일을 꾸미지요.
문제는 도쿠가와나리아키 도노의 결심입니다. 만약의 경우에는 자신의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셔야 되니까요"
이렇게 말했다.

다카하시는 자기가 짐작했던대로여서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말하자면 칼을 우리 지사들이 뽑는 것이 아니라,다이묘께서 먼저 빼들어야
한다 그말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막부를 상대로 일전(일전)을 벌일
결의까지 하셔야 합니다. 다이묘 자신의 목숨뿐 아니라,번의 운명까지
걸어야 한다 그겁니다.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말이 맞아요.
미도번의 멸망을 초래할지도 모를 중대사지요" "그런데 우리 번은 하나로
뭉쳐있지도 않단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두 파로 갈려서 늘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지 않습니까? 의견의 일치를 얻기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우리 천구당(천구당)에서는 다이묘의 양해만 있으면 얼씨구나하고
일어서겠지만 제생당(제생당)의 무리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음-"
다카하시는 절망에 가까운 그런 표정을 지었다.

천구당은 존황양이의 기치를 든 비교적 지위가 낮은 사무라이들을
중심으로 뭉친 반막부적인 조직이었고,제생당은 미도번이 어삼가(어삼가)의
하나이니 문벌을 중히 여겨 도쿠가와 본가인 막부의 방침에 따르기를
주장하는 기득권 옹호의 보수파 집단이었다.

"덴구"(천구)란 깊은 산중에 사는,얼굴이 빨갛고 코가 우뚝 솟은 상상의
괴물을 말한다. 하급 사무라이들이 뭉쳐서 행세하는 것이 못마땅하여
보수파쪽에서 그들을 괴물의 집단,즉 천구당이라고 이름지어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