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과 산업은행을 마지막으로 여행원제도도 완전폐지됐다. 가장
보수적이라는 은행에서조차 여성들의 진군이 가시화되고있다는 얘기다.

지난 2월 은행 정기 주총때 은행장선임못지않게 금융계의 관심을 모은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임원이 과연 탄생할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 주인공은 조흥은행 주부대학장 장도송씨(57). 그는 전국
은행원의 37%나 되는 7만 여성은행원들의"대모"다. 그가 은행원이 된것은
지난 54년. 그후 30년만인 84년에 청파동 지점장이 됐다. 은행사에
"여성지점장"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올려놓은 장본인이기도하다. 그후
10년가까이 4개점포의 지점장을 지냈다.

장씨는 결국 이사자리에 오르지 못했으나 이사후보에 오른것만으로도
여행원들이 어느 위치까지 와있나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주택은행 상계북지점 노주현지점장(49).

그는 우리나라에 세명밖에 없는 여성지점장중 한사람이다. 그는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레이디출장소"의 여소장과는 다르다. 직원이 30명인
중급점포의 엄연한 "지배인"이다. 노씨는 여자이기때문에 특별히
어려웠다는 생각을 결코 해본적이 없다. 모두가 "자기하기나름"이라는
소신을 갖고있다. 실제로 그는 상계북지점에 온지 한달도 못돼 수신을
15억원가량 끌어올릴정도로 능력을 발휘하고있다.

그러나 노씨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당했던적이 전혀 없었던것은
아니다. 엄연한 일류대학 출신임에도 한동안 같이 입행한 남자동기들이
승진하는것을 바라고보만 있어야했다. 여행원에서 행원으로 전직할수있는
책임자고시가 처음 생긴 지난77년에야 비로소 남자들과 동등한 대접을
받을수 있었다.

조흥은행의 장주부대학장이나 주택은행의 노지점장은 그래도 특이한
경우이다. 장씨의 경우 유일한 1급(부장급)이고 노씨는 몇명 안되는
2급(차장급)중의 한사람이다. 대부분의 여행원들은 5급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지난 3월말현재 전국 7만여명의 여행원가운데 책임자급인
4급이상은 0.1%인 6백16명에 불과하다.

이같이 책임자급 여행원이 "희귀존재"가 된것은 상당부분 제도상의
걸림돌에서 비롯됐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결혼하는 여직원은 은행을
그만두는것이 관례였다. 지난 76년 "결혼퇴직각서제도"가 폐지됐지만
관행은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았다. 지금 책임자급 대부분이
노처녀인것도 이때문이다.

80년대 중반부터 기혼 여성들도 자연스럽게 은행에 남아있을수 있게 됐다.
"대체방"이란 은어가 생겨난것도 이때였다. 대체방이란 같은 은행
직원끼리 결혼한 부부을 일컫는다. 돈의 이동없이 서류만으로 결제할때
"대체"라는 도장을 "빵"찍는데 빗댄 말이다. 상업은행의 경우 행내 커플이
전 직원의 15%인 7백쌍에 이를 정도이다. 기혼여성의 비율도 전체여행원의
45%안팎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여행원들이 받는 "괄시"를 제도탓으로만 돌리는것은 무리이다.
상당부분은 여행원자신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들이다. 자기의 한계를
미리 인정,"적당주의"로 지낸것도 부인할수 없다. 생산성면에서
남성들보다 떨어진다는 인식을 심어왔다. 업무처리나 능력면에서 많은
여행원이 남행원에 뒤져있는것도 숨길수 없는 현실이다.

일선창구에서 예금을 받고 돈을 내주는 텔러가 대부분인 여행원들.
하루종일 컴퓨터 단말기를 들여다 봐야해 30%정도가 단말기병(VDT)증세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민우회조사) 이들에게 여행원제도의 완전폐지는 새로운
의미를 담고있다. 제도적으로 진출공간이 넓어졌다는 것은 그에 걸맞는
"질"을 요구하고 있다는걸 뜻한다. "여행장이 출현할것"이라는 기대가
실현되기위해선 여행원 스스로가 얼마나 능력과 실력을 쌓느냐에 달려있다.

<하영춘기자> <이시리즈는 매주 화요일에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