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전반에 걸친 개혁이 추진되고
있는데 그가운데서도 금융개혁이 커다란 관심의 대상이 되고있다.
선진국에 비교하여 우리나라 금융이 얼마나 뒤처져있고 또 무슨 문제점을
갖고있길래 이처럼 개편의 요구가 비등하고 있는가.

금융은 돈에 여유가 있는 사람과 돈이 필요한 사람을 연결하여 생산성이
높은곳으로 자금이 흘러가도록 매개 혹은 중개역할을 한다. 흔히 인체의
혈액순환에 비유되는 금융에 문제가 있는경우 몸에 해당하는 경제에도
문제가 생기게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금융은 지난 30여년동안
산업정책과 경제개발을 지원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오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정부의 통제를 받아 금융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였고
낙후된 양상마저 보이게 되었다. 바로 이때문에 금융제도개편의 필요성이
계속해서 제기되어왔다. 금융부문의 발전과 성숙도를 측정하는 지표로써
총금융자산 대비 GNP(국민총생산)비율,즉 금융연관비율을 이용한다. 물론
이 비율이 금융의 질적인 성숙도를 반영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금융이
어느정도 양적으로 실물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는가를 나타내준다.
우리나라의 금융연관비율은 선진국인 일본과 미국은 물론 경쟁국인 대만과
비교하여도 크게 낮은 수준이며 이러한 낮은 수준은 결국 금융산업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참조>
우리나라에 비해 금융이 발전된 선진국들도 7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금융개혁을 추진해오고 있다. 미국은 최근에 일반기업의 상업은행 소유를
검토하는등 금융전반에 걸친 개혁을 추구하고있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7년이란 오랜 기간에 걸쳐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하여
92년6월에 금융개혁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킨바 있다.

금융제도개편을 추진하려면 금융및 금융기관의 역할에 대한 일반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금융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어느 개인이
여유자금을 직접 운용하는 경우를 고려해보자. 이사람은 우선 돈을
필요로하는 차입대상자를 수소문해야하며 얼마의 이자와 어떠한 담보나
지불보증을 요구할것인가를 결정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종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데 그 비용은 개인이 부담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설사 차입대상자를 찾은 경우에도 당초 약정한대로 이자및 원금을 제대로
상환할것인가 하고 차용자의신용을 걱정하게 된다.

즉 투자자가 직접 자금을 운용하는 경우에는 정보비용과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고민에서 우리는 금융제도의 중추가 되는 금융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쉽게 알아볼수 있다. 우선 금융기관은 다수의 자금수요자와
공급자를 상대함으로써 고객의 다양한 요구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해결할수 있다. 예를 들면 기간 금액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적절한
거래상대를 연결해주거나 또는 스스로가 거래의 당사자가 되어 금융거래를
촉진시킨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금융시장도 가격기구가 제대로 작동하고 모든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매개기능을 수행할수 있을때 효율성이 가장
높아질수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여타 시장과는 다른 여러특성,특히
공공성을 지니고 있기때문에 자율적인 시장기구가 반드시 금융제도의
안정성및 건전성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자원배분의 효율성도 달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소기업등 차입자의 신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불충분한 경우에도 금융기관은 시장의 자금수급과는 관계없이
신용을 할당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예를들면 어느 은행의 경영이
부실하다고 소문이 퍼질경우 그은행의 예금주들은 자신의 예금을 인출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남보다 먼저 예금을 인출하려 할것이다. 이러한
예금인출이 대량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건실한 은행마저도 지급불능의
사태에 처하게 된다. 금융기관의 도산은 엄청난 파급효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정부는 금융에 개입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금융제도의 안전성 유지를 목표로 한 개입이외에도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서 정부가 금융시장에 개입하여 왔다. 정부의
금융자원 배분에 대한 통제와 간여는 경제발전 초기단계에 있어서는
불가피한점이 없지 않았으며 한정된 금융자원을 정부의 정책목표에
부합되게 배분함으로써 그동안의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한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확대되고 그구조가 복잡해짐에 따라 정부에 의한
자원배분이 과거와 같이 효율성을 극대화시킬수 있는 정책수단이라고 할수
없게 되었다. 특히 정부의 정책목표달성을 위해 일반 금융기관이 취급하고
있는 정책금융은 그규모및 효율성 측면에서 최근 금융자율화 개방화를
추진하는데 있어서 커다란 장애요인이 되고있다. 정책금융은 그
포괄범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92년말 기준으로 총대출금의 약 56%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금융의 기능을 크게 제약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산업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된 빈번한 구제금융은 기업으로 하여금 은행빚을
많이 쓰도록 유인함으로써 기업의 금융비용을 가중시켰고 기업 경쟁력마저
저해하여 왔다.

따라서 금융자율화 개방화 시대를 맞아 정부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금융시장내에서 발생하게 되는 시장의 실패및 비효율성을 보완하는데
국한되어야 할 것이며 건전한 신용질서를 유지하고 금융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될수 있도록 최소한의 개입에 그쳐야한다.

그러면 금융제도 개편을 왜 이렇게 서둘러 추진해야 하는가. 우선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대외여건 변화를 들수 있다. 첫째 국내 금융산업에 대한
개방압력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은 선진국 금융산업과 비교할때
경쟁력이 취약하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보호받고있다. 그러나 국내
금융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현재의 금융제도는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
둘째 금융의 범세계화(globalization)이다. 경제에 관한한 국경의 의미가
퇴색하고 정보 통신의 발달과 함께 금융의 범세계화는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따라서 한 국가의 금융제도가 국제적 기준에 맞지 않을 경우
국제금융거래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한편 금융제도는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개편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행정규제가 많고 복잡하기로 유명하지만 특히
금융부문에서는 그 도가 지나치다. 따라서 금융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과다한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해야 한다. 또한 선진국에 비해 금융관련
기술이 뒤떨어져 있고 금융기관의 경영도 경직되어 있어 금융산업의
국제경쟁력이 취약하다. 이것이 금융제도개편을 통한 경쟁력 강화가
시급한 이유이다.

금융산업개편 작업은 우선 금융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도록 금리등
가격기능을 되살리고 정책금융을 축소하여 금융 스스로에 의한 자원배분
기능을 높여야 하는 과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금융기관간 업무영역은
전세계적으로 겸업주의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금융의 안전성을
강조한 과거 분업주의 원칙에서 탈피하여 경쟁촉진과 금융의 효율성 제고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금융의 범세계화에 따른 국제경쟁에 대처하려면
우리 금융산업도 겸업주의를 채택하는 방향으로 장기적으로 개편되어야할
것이다. 다만 금융시스템의 안전을 유지 도모하기 위해 지불 결제서비스는
은행의 고유업무로 남아야 한다. 어느 산업에 있어서나 진입 퇴출의
장벽이 낮을수록 경쟁이 촉진되어 효율성이 제고되지만 금융산업은 그
공공성으로 자유로운 진입 퇴출을 허용할수 없다. 그렇더라도 진입
퇴출정책을 좀 더 투명하게 하여 부실한 기관은 도태되고 새로운 기관의
진입으로 금융시장이 활기를 유지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금융제도 개편이 아무리 필요하다고 해도 시급하고 졸속한 개편을
피하여 제도개편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