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길이 사쓰마의 명예와 성충조의 명예,그리고 개개인의 명예를
드높이는 길이라는 말도 수긍이 갔다. 말하자면 합법적으로 막부와
싸우게 되는 셈이니,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싶었다.

미친개 같은 이이나오스케를 당장 해치우지 못하는 게 분하기는
하지만,도리없이 번주의 권유에 따르기로 오쿠보는 마음먹었다.

그가 그 친유서를 읽고 묘한 가슴 두근거림을 느꼈던 것은 거사와는
관계가 없는,개인적인 어떤 가능성 때문이었다. 자기 자신의 출세의 길이
어쩌면 열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섭정인
히사미쓰가 성충조의 대표가 자기라는 것을 알고,친필로 자기 앞으로
서신을 보냈으니,일이 잘되면 사이고다카모리처럼 자기도 번주의 곁으로
성큼 다가갈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목숨을 버리기로 각오했던 일이 도리어 출세의 길로 이어질지도
모르니,사람의 일이란 참 희한하구나 싶으며 오쿠보는 혼자서 대고, "흠-
호-"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국의 일념 대신 개인의 출세욕이 가슴을 뿌듯하게 차지하게 된 오쿠보는
번주의 뜻에 따르겠다는 답서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성충조의 동지들을 설득하여 동의를 얻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그는 일차적으로 성충조의 간부급 동지들을 한자리에 모아 그
친유서를 공개한 다음,각자의 의견을 물었다. 뜻밖의 사태에 그들도 모두
놀라면서 대부분이 번주의 의사가 그렇다면 좇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찬성을 하였다. 그러나 개중에는 분명히 반대를 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들의 거사를 제지하려는 회유책에 불과하다면서 그 술책에
넘어가면 발목이 잡히는 꼴이 되어 만약 번에서 일어나지 않을 경우에도
앞으로 다시는 거사를 실행할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반대 의견에 대해서 오쿠보는 물론 그런 염려도 없지가
않지만,실권자인 히사미쓰가 직접 자기 손으로 쓴 글이니 그말을 믿는 것이
부하된 도리라면서, "설령 우리가 거절을 하고,예정대로 탈번을 하려고
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구. 그일이 탄로가 난 이상 불가능하다 그거야.
제대로 탈번도 못해보고,모조리 붙들려 옥살이를 하는 신세가 되는
것보다는 그뜻에 따르는 것이 옳지 않느냐 그거지"
이렇게 말했다.

그말에는 반대하던 사람도 더 뭐라고 할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