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그해도 서서히 저물어갈 무렵이었다. 어느 날 오후,번저에서 근무를
하고있던 아리무라유스케는 밖에 누가 찾아왔다는 전갈을 받았다.

누굴까,혹시 마쓰코가 시즈부인의 심부름으로 찾아온 게 아닐까 싶으며
밖으로 나가보니 뜻밖에도 동생이었다.

"아니,너 웬 일이지?"
놀라는 형을 보고 아리무라지사에몬은 그저 싱그레 웃기만 했다.

유스케는 슬그머니 긴장이 되며, "어떻게 된 일이야? 모두 사쓰마를 떠나
에도로 왔나?" 하고 약간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아니"
지사에몬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나 혼자 왔어" "뭐,너 혼자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응?"
"얘기가 길어.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게. 형,나 지금 배가 너무 고프다구"
지사에몬은 먼길을 오느라 지쳐서 그 행색도 을씨년스러웠지만,얼굴도
무척 수척해 보였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미 혼자서 탈번을 해온게
틀림없는것 같아서 유스케는 내심 걱정이 되고,배가 너무 고프다는 말에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얼른 주머니에서 지전(지전)을 한장 꺼내어 주며
가까이에 있는 단골 음식점을 가르쳐 주었다. 그집에 가서 요기를
하고,기다리고 있으면 일을 마치고 그곳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퇴근후에 유스케는 그 음식점으로 가서 동생을 데리고 시즈부인의 집으로
향했다. 보나마나 탈번을 해온게 뻔한데,자기의 숙소에 데리고가기는
아무래도 찜찜했던 것이다. 유스케는 번저에서 운영하는 합숙소에
기숙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료들의 눈이 두려웠다. 탈번을 한 자는 이미
번의 법령을 어겼으니,범법자로 낙인이 찍혀 붙들리면 처벌을 받게
되어있는 것이다.

시즈부인의 집이 있는 호젓한 골목길에 들어서자 힐끗힐끗 사방을
둘러보고나서 지사에몬이 나직한 목소리로 형에게 말했다.

"형,나 탈번을 해서 왔다구" "알고있어" "어떻게?" "뻔하지 뭐야" "왜 혼자
탈번을 했는가 하면." "안돼. 그런 얘기는 아무데서나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구. 에도는 사쓰마와는 다르다는 걸 명심해야 돼" "알았어"
유스케는 처음 시즈부인을 만났을 때 각별히 입조심을 하라는 말을 들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자기가 동생에게 단단히 당부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