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의 우화 한편이 생각난다.

어느 임금이 대연회를 열기로 했다. 왕이 음식을 장만하고 참석자는 그저
잘익은 포도주 한병씩만 가져오도록 했다. 잔칫날이 왔다.
사람들이 가져온 술들은 모두 큰 동이에 모아졌다. 그리고 식탁에
둘러앉아 사람들은 그 포도주를 잔에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맹물이었다. 모두들 포도주를 가져올 것이니까 나 하나쯤 포도주 대신
물을 가져가도 괜찮겠지 하면서 물을 가져왔던 것이다.

일본의 어느 교육관련 잡지에서 국민학생들에게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 본 일이 실렸다. 그 중 눈길을 끄는 대목중에 역사책을 좋아한다는
답이 있다. 무사들의 칼싸움이나 전쟁장면이 있다가 한장 더 넘기면 그
무사가 죽어버리거나 다쳐서 금새 결판이 나기때문에 좋아한단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생 참고서가 가장 잘 팔린다고 한다. 책을 들추면 거기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올해는 책의 해이다.

숱하게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중에는 "포도주"도
있지만,한권쯤은 아무도 모르겠지 하면서 "맹물"을 담은 것들도 있다.

독서를 취미로 드는 사람이 많다. 최근들어 등산으로 취미를 바꿨지만
필자도 전에는 독서가 취미라고 했다. 독서가 취미라니 부끄럽기도 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남들이 얘기해 줄 때 조금은 부끄럽다. 왜냐하면
필자는 정독이나 통독보다는 주로 발취독을 하기 때문이다.

책을 사들면 우선 제목을 훑어본다. 그리고 내가 이 주제로 책을 쓰면
어떻게 쓸까를 골똘히 먼저 생각해 본다. 가령 다리(교)라는 제목의 책을
읽는다고치자. 우선 다리의 원관념을 생각한다. "건네준다"는 것이
원관념이다.

다리의 일반적인 형태를 생각하고 그 다리에서 있었던 내가 아는 이야기를
일순정리해 본다. 그리고 건네준다는 원관념을 쫓아서 생각을 넓혀가본다.

"포도주"가 아닌 "맹물"은 읽지않고 뛰어넘어 버린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쏟아지는 책을 바쁜 틈속에서 읽어 낼 수 없다. 그러나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은 책을 읽지 않는 풍토보다 책을 사고서도 읽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읽지 않는 책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책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