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금융계가 사정활동의 타깃이 되고 있습니다. 사퇴나 구속으로
은행장만도 4명이 공석이된데다 감독기관에서까지 비리가 적발되는등..

<>가슴이 아픕니다. 금융계뿐 아니고 사회 각분야에서 양식을 일탈한
일들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선배로서 책임도 있고 죄의식을 함께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프지만 이번 새정부의 조치를 계기로 양식있는 사람들이
책임있는 일을 맡는 쇄신의 전기가 됐으면 합니다.

-요즘 사정활동의 결과를 보면 금융계에 불건전한 관행이
고질화돼있는것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근본원인이 어디있다고 보십니까.

<>기본적으로 개인의 양식문제겠지요. 모든 일은 상식을 벗어나지 않게
해야합니다. 인간성이 바탕이 돼야하는데 그렇지 못한것 같습니다.

-영수증을 변칙으로 처리해서 비자금을 모았고 그것도 한 은행의 전지점이
동원된것은 개인 양식차원의 문제로만은 보이지 않는데요.

<>돌아다니면서 영수증을 수거했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지요.
동화은행사건만 없었어도..

-은행제도상의 구조적인 문제도 있을텐데요. 예컨대 업무추진비 자체가
너무적게 비현실적으로 짜여져 있다든가 말입니다.

<>그렇다면 합법적으로 예산을 받아서 써야지요. 은행이면 은행수준에
맞게 필요한 최소한도의 예산은 당당히 확보해야죠. 비정상적인 일에
양식수준을 벗어나 자금을 쓰려다 보니까 편법이 동원됐겠지요.

-은행장을 두번이나 역임했는데 자금이 필요하신적이 있었겠지요. 그때는
어떻게 했습니까.

<>조흥은행장 시절에 정기예금금리보다 신탁금리가 높아서 예금이 그리로
무더기로 빠져나간 일이 있었습니다. 70년부터 72년까지 상당기간
계속됐는데 지점장들이 빚을 얻어다 금리차를 메우면서 예금을 붙들어야
했습니다. 고민끝에 당시 남덕우재무장관에게 건의를 해서 은행별로
3천만원씩인가를 받아 특별경비로 썼습니다. 지금도 비현실적인 문제가
있다면 우선 정상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먼저 기울여야지요.

-결국 은행장의 처신이 문제인데요. 은행장이 가장 유념해야할
행동준칙이 있다면 .

<>거래선에 대해서 가부간의 결정을 신속히 하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오래끌다 보면 오해를 살수밖에 없습니다. 거래처에서 보면
"뭔가 갖다주어야되는가 보다"하고 느낄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시간을 끌다가 잘되도 문젠데 만일 안될 경우에는 거래기업도 큰 낭패를
당합니다. 계획을 세워놓았는데 시간을 잔뜩 끌고난 뒤에 안된다고하면
사업에 차질이 생기지요. 은행장이 결재할 일이 있으면 살펴보고 되면
된다,안되면 안된다하면 그만입니다. 따로 부탁하고 사정을 들어주고
할일이 있겠습니까.

-규정대로만 할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은행장은 대외적인 교섭도 해야할
텐데요. "1등 은행장"으로서의 자질을 꼽으신다면.

<>은행장은 내치도 잘해야하지만 외치도 부족하면 안되지요. 내부에서는
무엇보다도 공정성이 제1의 덕목입니다.

또 대외적으로 예금주나 금융당국과 협의할 일도 많겠지요. 대외적인
문제에서는 무엇보다 자기은행의 이익만을 꾀하지말고 금융계전체의 발전을
생각하는 은행장이 되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은행장의 운신이 제약되는 가장 큰 문제가 은행장선임방식에 있는것
같습니다. 정부가 시중은행장까지 지명하니까 정부나 정치권에
잘보여야하고 이러다보니 비리나 부정이 생기는것 아니겠습니까.

<>대통령께서 시중은행장선임에 정부가 간여하지 말라고 했는데 잘하는
일입니다. 은행장을 누구로 뽑느냐하는건 은행에 맡겨야 합니다. 다만
아직은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은행장을 뽑는데 익숙지 못하니까 일정한
가이드라인은 제시할 필요가 있겠지요.

-은행장선출 방식은 어떻게 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가장 바람직한 모양은 은행안에서 다음 은행장이 자연스럽게 양성되는
형태라고 할수 있지요. 후임행장을 양성하는 일은 현직행장이
맡아야하고요.

만일 후임행장예정자가 아직 이르다싶으면 외부에서 유능한 인사를
영입하는것도 필요합니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자연스럽게 은행장자리를
물려주는 일이 많습니다. 또 대장성등 외부에서 유력인사를 영입하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은행의 상업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은행장선임을 자율화하는 것이
제대로 정착될수 있을지 의문인데요.

<>기본적으로 시중은행도 기업으로 성장해야합니다. 은행도 주주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흑자를 내서 배당도 제대로 해야합니다.
그래야만 장래를 대비한 자본축적도 가능합니다.

-은행장도 그렇지만 은행원들에게도 문제가 없는것은 아닙니다. 사실
부정이나 불건전 관행은 창구에서 이루어지는것 아닙니까.

<>은행장 재임때도 그렇게 말하곤 했습니다만 은행원들은 목전의 이익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습니다. 제가
은행장을 처음 맡은게 25년전인데 그 당시 얘기들이 지금도 거론이 됩니다.
누가 어떻게 했다더라 하는 얘기들이 다른 사람입에서 아직까지 나온다는
겁니다. 길게 보아야 합니다.

-세태탓도 있겠지요. 세상이 달라졌다고들 하는데 옛날은행원과
지금은행원은 뭐가 다릅니까.

<>달라진 것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요. 자기 분수를
지키고 상식에서 일탈하지 않는 사람은 과거나 지금이나 좋은 평을
듣습니다.

과거에도 상식을 벗어난 사람이 있었고 그들 모두가 세월이 지난뒤라도
상응한 비판을 받았지요.

-초대 은행감독원장을 역임하셨는데 과거엔 어땠습니까.

<>62년부터 5년간 감독원장을 맡았었읍니다. 그때는 소신껏 일 했습니다.
도심에 은행지점을 내는게 큰 이권이었는데 여기저기서 압력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원칙에 안맞는 일을 허용한 기억은 없습니다. 자기위치를 제대로
지키는 게 중요하지요.

-이번에 은행을 감독하는 감독원의 부원장이 비리혐의로 적발이 됐는데
감독기관까지 부정이 파고들었다는데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할말이 없습니다. 선배가 잘못한 탓이지요.

-감독자의 윤리가 있다면.

<>윗물이 맑아야지요. 원장이 강직하면 아랫 사람들도 따르겠지요.

-금융계에서는 요즘을 위기라고들 합니다. 경쟁도 치열해졌지만 온갖
비리가 파헤쳐지면서 공신력이 실추되고 따라서 은행원들은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금융사상 아마 이런때도 없었지요.

<>은행경영여건이야 과거에 비할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한때는
예금금리가 대출금리보다 높아서 역마진이 나고 제살을 깎아야하는
상황까지 있었습니다. 요즘이야 정부규제도 줄었고 소신껏 활동할수 있지
않습니까.

사정활동이 강하긴 하지만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합니다.

-일부에서는 금융이 너무 위축된다고 우려하는 인식도 있습니다. 금융이
경제의 혈관이니까 깨끗해야 경제도 건전하게 발전할수 있다고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혈관이 위축되면 경제도 위축될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잘못된 것을 정상화하는 것을 위축이라고 할수 없지요. 상식에 벗어난
것은 바로 잡아야 합니다.

비정상적인 행위나 관행을 방치하면 정직한 사람만 피해를 봅니다.
경비나 로비자금을 제맘대로 쓸수 있도록 놔두면 금융산업전체가 오히려
위축될 것입니다.

다만 사소한 일들을 가지고 문제를 삼아서 사정이라고 몰아친다면
안되겠지요. 은행의 공신력이 실추되면 경제전체가 어려워집니다.

-무척 건강하게 보이시는데.

<>양심에 가책될 일이 없으면 건강한겁니다. 금융뿐 아니라 경제전체가
마찬가지겠지요.

<정리=정만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