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개혁이라는 홍수에 떼밀리고 있다. 국민들의 관심과
화제도 온통 개혁에 모아진다. 부정부패나 사회비리에 연루됐던 사람들이
속속 적발되는 중이다. 교육계비리 금융부조리 군인사부정에서 보듯
우리사회를 좀먹던 암적인 폐습들이 잇달아 파헤쳐지고 있다.

개혁의 최우선과제인 부패척결작업은 국민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있다.
부패의 구조악을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거듭날수 없다는 점을
국민들은 공감하고 있다. 지금은 개혁의 초기단계이다. 쇼크요법을
동반한 혁명적 진행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법과 제도의 기본틀안에서는
개혁을 밀어붙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개혁이 신속히 추진됨으로써 기업마인드를 해치고 공직사회도
위축시킨다고 우려한다. 개혁주도세력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기득권계층의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자기보호논리라고 일축한다. 당분간
개혁속도나 수위를 조절할 필요가 없다는게 개혁주체세력의 입장인 것같다.

개혁은 곧 "선"이라는 것이 현재 우리의 국민정서이다. 개혁이라면
앞뒤안가리고 박수를 치고 있다. 엊그제 공보처의 여론조사에서는
김영삼정부의 개혁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10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정부가 출범한지 두달만에 나라전체가 개혁신드롬에 걸린 것같다.

개혁이 국민감정에 부합한다고해서 개혁속도나 개혁방법을 놓고 약간의
다른 의견만 제기해도 반개혁으로 몰아붙이는 경향도 있는 모양이다.
개혁에 대한 건전한 비판에는 귀를 기울여야한다. 개혁이 경직된
분위기에서 비밀리에 추진되고 획일적으로 진행된다면 개혁의 장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우리사회의 암적존재인 획일성
경직성이 곳곳에 깔려있다. 어느날인가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중에는
골프치지 않겠노라고 한마디했다. 그러자 즉각 국무회의가 열려
골프장출입을 자제하기로 결의했다. 공직자 은행원 국영기업체임직원
기업인까지도 골프장출입을 삼가는 분위기다. "골프안치기"가 개혁의
일부인양 생각하게 됐다.

대통령의 말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아랫사람들의 경직된
행동양식이 바로 개혁대상이다. 과거 군사정권의 통치유산중 가장 큰
폐해가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은연중에 국민속에 심어놓았다는 점이다.
김영삼정부가 최우선적으로 개혁해야할 과제는 지난 한세대동안 우리사회에
누적돼온 권위주의의 잔재를 벗기는 일이다. 군사문화의 부산물인 사고의
경직성이 국민개인의 자율과 창의를 가로막아 사회발전을 더디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개혁은 획일적으로 강요해서는 성공할수없다. 무서워서 억지로 끌려가는
개혁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서 동참하는 자발적인 개혁이 이뤄져야한다.
개혁이 지금처럼 행위자개인의 비리를 적발하는 수준에 머무르기보다는
국민개개인의 자율과 창의를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

앞으로 한달간 매일같이 비리행위자에 대한 수사 처벌에 관한 보도가 신문
TV에 오른다고 가정해보자. 국민들은 신물이 날 것이고 모처럼 불붙은
개혁열기마저 쉽게 사그라들 것이다.

개혁작업은 더이상 개인의 도덕적 윤리적 비리만을 따지는 식으로
진행될수 없다. 국가경쟁력강화를 통해 우리나라를 일등국으로
도약시키겠다는 적극적 견지에서 추진돼야 한다. 이는 개혁의
궁극적목표와 무관하지 않다. 개혁의 우선적 관심이 부패척결에만
모아진다면 개혁의 일차적인 목표는 비리를 저지른 행위자를 색출 처벌하는
일이될 것이다. 그러나 국가경쟁력강화에 초점을 맞춘다면 개개인이
비리를 저지를 소지를 원천봉쇄하는 제도 관행을 마련하는 일에 역점을
두게 된다. 민간부문에 대한 공적 개입요소를 최대한 배제함으로써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비리의 당사자가 될 가능성을 제거해야 한다.
사회발전을 철저하게 개인의 창의와 자율에 맡기고 국가의 역할은 종전의
"규제자"에서 "조정자"로 바뀌는게 바람직하다. 개혁작업이 이런 방향으로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정치.관료집단이 국민생활이나 국민경제에 부담을
주는 일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부정부패 정경유착과 같은 경제외적
비용만 없애도 우리의 국가경쟁력은 현저히 높아질 것이다. 이렇게만 되면
김영삼대통령이 말한 "잘살아보자"에서 "바르게살기"차원을 넘어
세계일류국으로 진입하는 것도 그다지 어려울 것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