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의 연대"였던 60년대 그 죽음의 그림자는 스포츠의 장이라고
예외일수는 없었다.

"세기의 복서"였던 무하마드 알리는 익명의 협박자들이 제거를 노리는
첫번째 목표였었다. 사각 링의 왕좌에 안주치 않고 인종주의와
베트남전쟁이라는 당시의 두 시대적 이슈에서도 그는 "떠벌이"역할을 맡아
위험을 자초했었다. 그러나 낯선 군중속을 큰 경호없이 헤치고 다니면서도
그는 이렇다 할 화를 입지 않았다. 역시 운좋은 사나이였다.

테니스의 슈퍼스타 모니카 셀레스가 경기장에서 봉변을 당했다는 첫
뉴스가 전파를 탔을때 세계는 "저런,테니스 코트에까지."하며 정치적
테러에 치를 떨었다. 세르비아 출신으로 86년이후 미국 플로리다에서
선수생활을 하고있는 그녀는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에 대한 세르비아의
침공을 규탄해달라는 압력을 주위로부터 줄곧 받아왔었다. 그러나 자신은
운동선수일뿐 정치인은 아니라며 침묵으로 일관해 크로아티아 출신의
테니스 남자프로 이바니세비크등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불러온 처지다.
"정치적 테러"로 지레 짐작할만도 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를 찌른 한 독일 사나이는 셀레스에게 세계 랭킹1위를
뺏긴 슈테피 그라프의 한 극성팬으로 드러났다. "셀레스를 죽일
생각은없었고 슈테피 그라프가 다시 1위로 올라설 수 있도록 적당히 그녀를
해치고 싶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변이었다. "팬(Fan)은
"미치광이"(Fanatic)와 통한다고 했지만 이럴 수가." "차라리
정치테러였더라면 마음이 덜 아팠을 것"이라는 통탄이 도처에서 쏟아지고
있다.

당사자인 모니카 셀레스 역시 신체적 고통보다도 그 가공할 동기에서 오는
충격과 마음의 아픔으로 몇십배 더 괴로워 하고,그라프 또한 독일땅에서
자기를 좋아하는 한 독일인 팬에 의해 저질러진 이 어이없는 해프닝에
몸둘바를 모른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스포츠 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팀이나 선수가
졌을 경우 66%가 큰 위축감을 느끼며 이중38%는 일상생활과 심기에 영향이
갈 정도의 개인적 좌절감을 느낀다고 한다. 경기장에 갈 때 팀의 컬러와
똑같은 차림을 하고 선수들과 호흡하고 맥박을 같이하며 환호하고 또
좌절도 한다. 단순한 관전이 아니고 승리의 쾌감을 맛보기 위한 일방적
편들기다. 마음속의 우상이 무너질 때의 좌절과 허무감은 이해가
가지만,이같은 탈선은 자제력을 잃어가는 현 세태의 한 반영이라는 점에서
모니카 셀레스의 아픔은 그녀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아픔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