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가장 손꼽히는 교통지옥이 파리도심에 있다. 에투알광장과
콩코르드광장이다. 에투알광장에서는 개선문을 중심으로,콩코르드광장에서
는 룩소르의 오벨리스크 주변의 분수대를 중심으로 끌없이 이어지는
자동차 행렬들이 신호등도 차선도 없이 사선팔방으로 흘러 나간다. 일정한
규칙이 없이 순간 순간의 판단에 따라 광장을 돌아 목적지로 가려고
애쓰는 운전사들에게는 모험의 장소가 아닐수 없다.

서울에도 그에 못지 않은 곳이 있다. 용산에 있는 삼각지의
고가입체교차로다. 손신호를 해주는 교통순경이 없는 경우에는 눈치껏
배짱으로 차를 몰고 나가지 않으면 영락없이 꼼짝을 못하게 되는 곳이다.
러시아워에는 언제나 이 교차로를 중심으로 차량행렬이 길게 늘어지게
마련이다.

지난 67년 이 교차로가 세워졌을 때만 하더라도 교통난의 주범은
아니었다.

대중에게 낭만을 심어준 상징이었다. "삼각지 로타리에/궂은 비는
오는데/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하며."대중가요가수였던 배호가 구성진
음성과 가락으로 "돌아가는 삼각지"라는 노래를 불러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서울의 명물이 되었다. 거기에 박종호감독이 같은 이름의
영화를 만들어 흥행에 성공을 거두게 되자 그 성가는 더욱 높아졌다.

그 명성과는 달리 오늘날에는 그 교차로가 교통지옥의 대명사나 다름없게
되었다. 세사변전의 무상을 일깨워 주는 표징같기도 하다.

세계의 여러 도시를 두루 돌아다녀본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단순 설계된
고가입체교차로가 있을수 있는가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수 없다. 그 어떤
도시에서도 에투알광장이나 콩코르드광장과 같이 설계된 고가 입체교차로를
찾아 볼수는 없다. 차량들이 어느 방향에서나 방해를 받지 않고 진행할수
있는 말 그대로의 입체교차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없이
지적되어온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되는 서울시
건설행정의 표본중의 하나다.

용산구청이 교통혼잡만을 부채질하고 주변건물의 시계를 가리는 괴물인
지금의 고가교차로를 철거하고 입체교차로다운 교통소통체계를 새로이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수 없다. 서울역~한강대교방향은
교차로 없이 직진과 U턴을 하게 하고 이태원~용산구청방향은 지하차도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돌아가는 삼각지"의 낭만은 사라지겠지만 속시원히
차량들이 질주하게될 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