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오래기억될 '합죽'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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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게 차려 입은 사람들이 동상 제막식장에 모여들어 있다. 한 신사가
연설을 시작한다. 그 연설은 의미없는 잡음만이 울려 퍼질뿐이다. 이윽고
동상의 막이 제쳐진다. 기대에 차있던 군중은 깜짝 놀란다. 동상 위에서
자고있던 거지의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거지는 놀란 나머지 동상에서
내려오려고 버둥거렸으나 동상이 들고있는 칼에 바지가랑이가 걸려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곳에 있던 사람은 그 광경을 보고 온통 웃음바다를
이룬다.
영국이 낳은 20세기 세계최고의 희극배우이자 영화감독.제작자.각본가인
찰리 채플린(1889~1977)이 거지로 출연한 "도시의 불빛"(1931)이라는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서 의외의 반전에 폭소를 터뜨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각만해도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그의 분장술 또한 영원한 피에로상이
아닐수 없다. 몽땅한 콧수염,자그마한 실크굴뚝모자,보릿자루처럼 헐렁한
멜빵바지,몸에 꼭 끼는 연미복,작은 지팡이,걸을 때마다 벗겨질것같은
큼직한 구두,아장 아장 걷는 거위걸음.어느 것 하나 희화적이 아닌 것이
없다. 그가 자서전에서 "나는 온 세계 사람들에게 웃음으로 희망을 찾아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듯이 무성영화시대의 팬들에게는 어둠속의 횃불과
같은 존재였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들이 단순히 웃음만을 선사한 것은 아니다. 웃음
뒤에는 슬픔과 고독,너그러움과 휴머니즘이 깃들여 있고 인간성 상실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철학이 도사려 있다. 그의 예술세계는 한마디로
"웃음"을 넘어선 "인간성회복 선언"으로 압축된다.
그가 8세때 첫 무대에 선 이후 100편 가까운 작품을 남긴 공로는
아카데미특별상,영국왕실의 나이트작위,옥스퍼드대학의
명예문학박사학위등의 수여로 두드러진다.
40여년동안의 연예계 활동으로 항상 웃음을 안겨주다가 타계한
김희갑옹(71) 또한 우리에게는 채플린 못지 않은 피에로상이었다. 무려
700여편이나 되는 영화에 출연하여 그 특유의 웃음과 페이소스를 안겨주던
주인공이었다.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가요에 고향을 북에 둔 설움을 실어
부르던 생전의 애절한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그의 피에로적인 일생을 기리는 사업이나 훈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연설을 시작한다. 그 연설은 의미없는 잡음만이 울려 퍼질뿐이다. 이윽고
동상의 막이 제쳐진다. 기대에 차있던 군중은 깜짝 놀란다. 동상 위에서
자고있던 거지의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거지는 놀란 나머지 동상에서
내려오려고 버둥거렸으나 동상이 들고있는 칼에 바지가랑이가 걸려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곳에 있던 사람은 그 광경을 보고 온통 웃음바다를
이룬다.
영국이 낳은 20세기 세계최고의 희극배우이자 영화감독.제작자.각본가인
찰리 채플린(1889~1977)이 거지로 출연한 "도시의 불빛"(1931)이라는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서 의외의 반전에 폭소를 터뜨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각만해도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그의 분장술 또한 영원한 피에로상이
아닐수 없다. 몽땅한 콧수염,자그마한 실크굴뚝모자,보릿자루처럼 헐렁한
멜빵바지,몸에 꼭 끼는 연미복,작은 지팡이,걸을 때마다 벗겨질것같은
큼직한 구두,아장 아장 걷는 거위걸음.어느 것 하나 희화적이 아닌 것이
없다. 그가 자서전에서 "나는 온 세계 사람들에게 웃음으로 희망을 찾아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듯이 무성영화시대의 팬들에게는 어둠속의 횃불과
같은 존재였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들이 단순히 웃음만을 선사한 것은 아니다. 웃음
뒤에는 슬픔과 고독,너그러움과 휴머니즘이 깃들여 있고 인간성 상실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철학이 도사려 있다. 그의 예술세계는 한마디로
"웃음"을 넘어선 "인간성회복 선언"으로 압축된다.
그가 8세때 첫 무대에 선 이후 100편 가까운 작품을 남긴 공로는
아카데미특별상,영국왕실의 나이트작위,옥스퍼드대학의
명예문학박사학위등의 수여로 두드러진다.
40여년동안의 연예계 활동으로 항상 웃음을 안겨주다가 타계한
김희갑옹(71) 또한 우리에게는 채플린 못지 않은 피에로상이었다. 무려
700여편이나 되는 영화에 출연하여 그 특유의 웃음과 페이소스를 안겨주던
주인공이었다.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가요에 고향을 북에 둔 설움을 실어
부르던 생전의 애절한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그의 피에로적인 일생을 기리는 사업이나 훈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