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의 실시목적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궁극적인 목적으로 금융자산소득을 정확히 파악,다른 소득과 함께
종합과세함으로써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높이고 소득분배구조를 개선하려는
조세정의의 실천이다. 다른 하나는 부수적인 성격으로 돈세탁을 노리거나
노출을 꺼리는 음성적 자금에 의한 지하경제를 근절시킴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이같은 목적의 금융실명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각각의 정치 경제 사회적인 여건에따라 그 도입및
정착과정,주요내용등은 조금씩 다르다.

미국 영국 프랑스등은 법제화시키지 않고 오랜 관행으로 자연스럽게
정착된 반면 독일은 조세징수법이라는 강제수단에 의존하고있다.

일본은 뒤늦게 그린카드제를 주축으로 법제화시켜 금융거래의 실명화를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지금은 행정지도라는 우회적 수단을 통해
실명제의 자연스런 정착을 계속 시도하고 있고 어느정도 성과를 얻고있다.

선진국들은 이처럼 안정된 금융실명화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공평과세보다는 검은돈의 세탁을 막는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이 70년에 제정한 현금및 외환거래보고법이나 독일이 작년에 입법한
부당이익조사법등이 그런 목적을 담고있다.

일본도 작년7월의 대장성통달을 통해 "마약등 약품의 부정거래에 따르는
돈세탁(money-laundering)방지"를 위한 금융거래실명화를 강화하고있다.

이미 제도화된 금융실명제를 위반하는 예금주나 은행관계자등에게는
강력한 형사처벌이 따른다. 특히 금융기관과 직원에 대한 문책과 처벌이
더 엄하다. 미국은 과실의 경중에 따라 1천~50만달러의 벌금 또는
최고5년까지의 실형이 가해진다. 독일은 경고서한과 재교육에서부터
탈세방조혐의등으로 처벌된다. 금융기관 자체감사기능을 통한 직원들에
대한 감시도 철저하다.

그러나 선진국들의 금융실명제가 관행만으로도 자리잡을수 있었던것은
이러한 물리적 처벌보다는 금융기관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뒷받침됐다.

이러한 사실은 특히 뭉칫돈의 이동을 검증하는데 금융기관관계자들의
판단에 절대의존하고 있다는데서 알수있다. 미국의 경우 1만달러이상의
현금예치에 대해서는 은행이 국세청에 신고토록하고 있다.

금융기관에 대해 강력한 관리의무를 부여하는것은 철저한 예금자보호나
다양한 서비스등이 이뤄지고있는 탓이다. 금융기관 밖에서는 돈의 흐름을
전혀 감지할수 없을정도로 서비스등이 완벽하기때문이다.

금융자산소득에 대한 과세방식은 각국의 사정에 따라 다양하다. 그러나
대부분 종합과세를 원칙으로하고 있다. 영국과 독일은 이자나 배당금이
지급될때마다 수시로 일정비율의 원천징수를 한뒤 연간소득을 정산할때
다시 합산과세한다.

물론 이중과세방지를 위한 장치를 갖고 있다. 독일은 주식등 유가증권의
양도차익에 대해서는 비과세원칙이지만 보유기간이 6개월미만이면 투기로
간주,종합소득세 과세대상에 포함시키고있는것이 여타국가와 다른
특징이다.

프랑스는 납세자의 희망에 따라 원천분리과세만으로 납세의무를 마칠수
있다. 그러나 원천징수율을 높게 정함으로써 종합신고과세를 선호하도록
유도하고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법적 강제력미비로 극히 일부이지만 비실명계좌를
갖는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비실명계좌의 경우 중과세는 물론이고
예금입출금등 금융거래자체가 철저히 관리되고있다.

일본의 경우는 비과세되는 예금이 많아 금융실명제정착의 장애가
되고있다. 다른 선진국들도 저소득층이나 소액저축자등의 재산형성을 돕기
위해 비과세대상인 금융상품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완벽한 실명제하에서의 비과세금융자산은 수혜자의 확인이
가능하지만 일본처럼 가명거래가 가능한 상황에서는 탈세수단으로
이용된다.

독일의 경우에서 보듯이 금융실명제의 정착이 과세제도의 안정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독일은 최근 5년간 종합과세 원천징수후 합산과세 종합과세복귀
원천징수후 합산과세로 시행착오를 되풀이했다. 원천징수에 대한
고액예금자들의 저항때문이다. 올해의 원천징수시행을 앞두고
작년하반기에만 1천억마르크의 독일돈이 룩셈부르크와 스위스제네바로
도피한 것으로 추산됐다.

우리나라는 금융실명제도입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대형성에도
불구하고 그 시행이 지연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는 부작용의
최소화를 위해 <>실명화<>종합과세<>자본이득(유가증권양도차익)과세의
3단계로 나눠 금융실명제를 추진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앞서 비실명거래를 부추기는 금융관행을 뿌리뽑고 사채시장등
음성자금의 유통경로를 차단하는 금융서비스를 개발하는등의 여건조성이
필요하다. 특히 대표적인 음성자금거래수단인 자기앞수표를 없애고
발행인과 수취인이 명시되는 개인.가계수표등 새로운 자금거래수단이
개발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또한 금융기관이 확보한 고객들의 금융자산정보가 세무당국등에 의해
남용되는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금융기관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제도의 완비나 부작용을 척결하려는 정부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금융실명제를 정착시키려는 금융기관들의 책임감과 사명의식이 먼저
자리잡아야 한다.

<이 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