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청사가 휘청거리고 있다.

부처간의 불협화음과 알력이 끊이지 않아 굵직한 정책마다 혼선을 빚고
있다. 마치 선장이 없는 배와 같이 항로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경제팀이 이처럼 갈피를 못잡고 헤매는 가장 큰 원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경제팀의 무게중심인 구심점이 흔들리는 탓이다. 향도격인 경제기획원의
조정기능이 먹혀들지 않고 사령탑인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의 령이 서질
않는다는 얘기다.

장관에 따라선 멀쩡히 회의에 참석해 합의를 해놓고 나중에 부총리의
면전에서 딴소리를 한다. 선수를 쳐 기선을 제압할 목적으로
개별부처차원의 희망사항을 "정책"으로 발표하는 일도 다반사로
이루어진다. 관계부처 합의내용과는 달리 "살"을 붙여 멋대로 뻥튀기를
하는 경우도있다. "사견"을 전제로 경제기획원을 공박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요즘 과천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풍경들을 보면 경제기획원과 부총리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지를 쉽게 알수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인제반란"으로 불리는 무노동 부분임금제 사건.
"임금문제에 대해 타부처가 조언을 할수는 있으나 이는 전적으로
노동행정의 문제"라며 기습적으로 합의와는 정반대인 "소신"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장관의 독불장군식 행동거지를 탓하는 선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장관이 표현한 어구에 있다. 이장관 말대로라면 노동정책은
노동부고유권한이다. 경제기획원은 "타부처"중의 하나일 뿐이고 따라서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도 조언할 자격만 있는 "경제장관"중의
한사람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장관이나 노동부의 기획원 백안시풍토는 정도차이가 있을지언정 타장관
타부처도 비슷하다. 경제기획원이나 부총리에 대해 "옛날"과 같은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인식을 저변에 깔고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에 대한 은행대출을 출자로 전환하겠다는 시책이 부총리에게서
나왔을때 재무부의 한 사무관은 지나가는 말이긴했으나 이렇게 내뱉었다.
"그양반 사안의 심각성을 도무지 모르는군" 과거의 기준으로 치면
"부총리모독죄"에 걸리고도 남는다. 한술 더떠 부총리자신은
"아이디어차원의 얘기였다"며 스스로 부총리발표의 공신력을 깎아내리기도
했다.

주력업종제 농지전용확대 금융실명제일정제시 제2금융권소유지분제한여부
등 신경제5개년계획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들이 대체로 유사한 배경을 갖
는다. 기획원이 반대하건 말건 부처이기주의를 관철하려하거나 서로 위신
을 세우려고 삿대질을 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사건이라는 얘기다. 한마디
로 경제기획원과 경제부처간의 역학관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다.

엘리트집단의 대명사였던 기획원-. 적어도 경제문제에 관한한 무소불위의
권능을 떨치던 경제기획원이 이같이 "경제부처"의 하나로 전락하고
있는데는 몇가지 요인이 있다.

무엇보다 관치경제시대가 끝났다는 점을 들수 있다. 목표를 정해놓으면
물불을 가리지않고 돌격대식으로 끌고갈 시대도 아니고 견인주체 자체가
관료집단에서 민간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일사불란한 획일과
능률보다는 창의와 자율이 더 높은 가치를 갖는 시대가 왔다는 뜻이다.

2단계 행정조직개편작업이 경제기획원의 해체나 축소에 과녁을 맞추고
있는 것도 무시할수 없는 이유중의 하나다. 기획원 전성기의 향수를
잊지못하는 직원들이 풀죽어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여기에다 부총리 스스로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있는 점도 한몫을 한다. 하기에 따라 "경제총리"도 "경제대통령"도 될수
있는 자리이건만 요즘 그의 지위는 "경제장관회의사회자"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평을 듣는다. 심지어는 "들러리"라는 민망한 별칭도 들을
정도다.

기획원과 부총리의 존재의의가 어떻게 달라졌건 정부조직법에는 "경제의
기획운영에 관해 관할각부를 통괄조정한다"고 권한을 부여하고있다.
안되는 일을 어거지로 밀어붙이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부총리 입에서
"도대체 날더러 어떡하란 얘기냐"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에서는 과천이
휘청거리고 경제가 흔들릴수 밖에 없다. 신경제도 마찬가지다.

<정만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