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던 뮤지컬 "에비타"가 5공초 우리나라에서도 공연된
바 있었다. 비천한 출신의 아리땁고 야심에 찬 한 여인이 장군 페론을 만나
집권을 하고 노동조합을 집권기반으로 하여 이윽고 페론을 능가하는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하다가 병으로 요절한 에비타 페론의 일생을 그린 뮤지컬이다.
그 주제곡 "나를 위하여 울지마라 아르헨티나여"(Don''t cry for me Argent
ing)는 이미 현대의 고전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 바쁜때에 한가하게 "에비타"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파란만장했던
한 여인의 개인사를 되뇌자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주도하였던 노동자
천국 아르헨티나가 어떻게해서 20세기 후반에 들어 세계 역사의 물결에서
사라지고 지금은 오랜 중병끝에 소생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가하는 역사의
교훈을 상기하자는 뜻이다.

수많은 밤의여인중 장군 페론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은 에비타는 페론이
집권하자 퍼스트 레이디로 정치 무대의 전면에 나서면서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이 노동조합 연합회를 자기 수중에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정부의 정책도
최우선 순위가 노동조합 결성을 촉진하고 이들 조합에 대한 전면적
지원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들에게 정치활동을 장려함으로써 이들을 순식간에 정치
세력화하고 이후 집권 페론당의 모체가 되었다.

그 다음은 밤마다 호화파티를 개최하여 재계의 유력 인사들을 초청하였고
만찬에 초대받은 손님들에게 교묘하게 압력을 넣어 과도한 헌금을 하게
하였다. 이 막대한 헌금으로 도시 빈민들을 위한 의료 시설을 전국적으로
세우고 노동조합지원을 위한 정치자금으로 활용하였다.

어느 기업인이 막강한 권력을 쥔 독재정권이 헌금을 요구했을때 거부하며
정치세력화한 노동조합이 부당한 요구를 하더라도 감히 이를 대항하겠는가.
이러하니 페론과 에비타의 국민적 인기가 절정을 향해 치달을수록 위축되는
것은 기업가요,고지식한 자산가일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결국 파이를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구워놓은 파이를 갈라먹는
데에만 국력을 소모해 아르헨티나는 선진국 일보 직전에서 3류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6.29이후 한때 위험수위에까지 올랐던 우리나라의 노사관계가 비교적 빠른
시일안에 그 갈등을 극복하고 산업평화를 찾는가 했더니 최근 노동정책에
대한 정부의 일관성이 흔들리면서 이상국면을 맞고 있다.

현대그룹 노사분규로 빚어진 최근의 사태를 보면서 어느 한쪽의 편을
물어서가 아니라 매우 심각한 우려를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미 지난 91년
통게로도 1인당 GNP대 근로자 평균임금이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 일본을
앞지르고 있다. 현대자동차만 하더라도 고졸 5년차 월평균임금이
160만원으로 타업종 산업평균의 2배 가까이 되고있는 마당에 두자리이상의
임금인상을 요구한다면 아무리 잘되는 기업인들 배겨날 재간이 있겠는가.

지금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최대의 시대적과제는 누가 뭐라고 하든
경제를 살리는 길이고 그 분수령이 금년 하반기이다. 여기서 주저 앉으면
개혁도,미주화도,통일의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이제 노사문제는 어느 한쪽의 양보나 타협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흥망이
걸린 선택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에비타 페론"의 아르헨티나는
역사의 교훈으로서도 다시 상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