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업이사람] (주)시즈 김주인 사장..스키장갑 20% 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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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산업이 채산성악화와 경쟁력상실로 내리막길을 걷는가운데 특정
제품하나만으로 세계무대를 주름잡는 기업이 있다.
스키장갑업체인 (주)시즈(대표 김주인.50)는 단일품목으로 지난해
1천3백만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경기도 성남에 있는 이회사는 유럽시장을 중심으로 모두 25개국에
자사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눈이 오고 스키를 즐겨타는 국가라면
어디에서든 시즈에서 생산한 제품을 발견할수 있다.
세계스키장갑시장 점유율면에서도 2,3위를 다투고 있을 정도이다.
전세계 스키인구는 줄잡아 3천만명. 이들이 3,4년에 한번씩 장갑을
교체한다고 보면 연간 세계스키장갑 시장규모는 약8백만켤레가 된다. 이중
시즈는 올해 약1백60만켤레(1천5백만달러규모)를 공급할 계획이어서 이부문
시장의 20%를 점유하는 셈이다.
시즈가 스키장갑으로 세계시장을 누빌수있는 것은 다원화된 생산체제의
구축과 지속적인 모델개발을 통해 대외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어서이다.
어떠한 주문이라도 척척 소화할수 있는 생산기반을 국내외에 갖추고
바이어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따라서 사양산업이라는
낙인은 이회사에 어울리지 않는다.
바이어가 고가의 소량제품을 급히 주문하면 성남공장이 발빠르게
대응한다. 국내 장갑업체로선 유일하게 갖춘
CAD(컴퓨터지원설계)시스템으로 장갑패턴을 결정짓는 레이저컷으로 원단의
기본틀을 만든다.
재단이 끝나면 성남일원의 홈워커운영체계가 풀가동된다. 봉제공정이
공장밖에서 1백여명의 숙달된 홈워커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이들
홈워커들은 총2백여대의 재봉기를 갖추고 4,5년씩 장갑만을 가공해온
고급기능인력들이다. 불량률이 낮을수밖에 없다.
다시말해 시즈는 "2만켤레의 스키장갑을 보름안에 선적해달라"는 바이어의
주문을 가볍게 받아들일수 있다. 특히 짧은납기의 주문은 상대적으로
고가의 적은 물량이어서 그만큼 부가가치가 높은 이점이 있다. 따라서
연간 이회사가 새로 생산하는 모델만도 1천가지가 넘는다.
이와달리 저가의 대량주문은 해외투자공장이 떠맡는다. 88년이후
동남아등지의 후발주자들이 저가품을 쏟아내면서 가격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시즈는 89년 경쟁력확보의 일환으로 스리랑카와 중국광동성에
생산공장을 세웠다.
이곳에서는 국내에서 들여간 원부자재를 이용,저가제품을 양산한다.
국내보다 생산성이 떨어지긴하지만 납기가 여유있어 각공정별 품질관리만
철저히 하면 저가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할수 있다.
이밖에 김주인사장의 유행을 앞선 소재선택에 대한 안목도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김사장은 일찍이 지난86년부터 텍스타일을 소재로한
제품생산에 주력했다.
가죽으로만 만들어지던 스키장갑의 소재가 텍스타일로 전환되면서 주문이
쇄도해 수출물량은 급속히 늘었다. 텍스타일소재의 스키장갑은 가격이
저렴하고 사용이 편리해 수요가 점차 늘어 현재 스키장갑 전체시장의 80%를
차지하고있다.
김사장이 스키장갑 생산에 나선 것은 지난77년. 가발업으로 70년에 처음
사업을 시작한 김사장은 과당경쟁에 따른 채산성 악화로 아이템 변신에의
필요성을 느낄때쯤 우연히 스키장갑 바이어를 만난다. 미국바이어인
콘로이씨는 첫오더로 가죽스키장갑 3만켤레를 주문했다. 당시로선 엄청난
물량이었다.
가죽장갑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김사장은 타업체에서 기술자를 데려오고
생산인력을 끌어모아 서둘러 제품을 선적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제품은 쓰레기판정을 받았고 10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업계에서는 "시즈가 섣불리 업종전환하다 클레임을 맞아 망하게 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장갑업계에는 "시즈라는 회사를
조심해야한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더이상 미국에서 거래할 수 없는
형국이 됐다.
김사장은 분하기도 하고 오기도 났다. 한번 시작한 일을 포기할 수
없다는 고집이 큰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싹으로 발전했다.
"그렇다면 스키장갑으로 유럽시장을 뚫어보자"고 마음 먹은게 이듬해인
78년.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스포츠용품쇼인 "이스포"전시회에 샘플
몇가지를 들고 찾은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다. 김사장은 비행기안에서
스키장갑업계를 장악해보겠다고 줄곧 되뇌었다. 그결과 1천켤레의 주문을
따냈다. 실망스러운 물량이었지만 모든 정성을 쏟아 제품을 만들어
보냈다. 그후 김사장은 고생한 보람을 찾을수 있었다.
"한국의 어떤 회사가 물건을 잘 만든다"는 소문이 유럽지역에 돌면서 독일
로이슈사등 굴지의 스포츠용품업체들이 79년부터 오더를 냈다. 유럽시장을
석권한 시즈가 미국시장을 다시 넘본 것은 지난 87년. 스키장갑 첫수출의
불명예를 씻는데 만10년이 걸렸다. 수출주력업체가 실추된 대외신용을
회복하는게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북 안동출신으로 66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김사장은 사법고시공부를
하다 적성이 맞지않는것 같아 이내 사업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가발업에서
장갑생산으로 업종전환하는데 성공한 김사장은 향후 5년이내에 세계 제일의
장갑메이커가 되겠다고 거듭 다짐한다.
<이익원기자>
제품하나만으로 세계무대를 주름잡는 기업이 있다.
스키장갑업체인 (주)시즈(대표 김주인.50)는 단일품목으로 지난해
1천3백만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경기도 성남에 있는 이회사는 유럽시장을 중심으로 모두 25개국에
자사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눈이 오고 스키를 즐겨타는 국가라면
어디에서든 시즈에서 생산한 제품을 발견할수 있다.
세계스키장갑시장 점유율면에서도 2,3위를 다투고 있을 정도이다.
전세계 스키인구는 줄잡아 3천만명. 이들이 3,4년에 한번씩 장갑을
교체한다고 보면 연간 세계스키장갑 시장규모는 약8백만켤레가 된다. 이중
시즈는 올해 약1백60만켤레(1천5백만달러규모)를 공급할 계획이어서 이부문
시장의 20%를 점유하는 셈이다.
시즈가 스키장갑으로 세계시장을 누빌수있는 것은 다원화된 생산체제의
구축과 지속적인 모델개발을 통해 대외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어서이다.
어떠한 주문이라도 척척 소화할수 있는 생산기반을 국내외에 갖추고
바이어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따라서 사양산업이라는
낙인은 이회사에 어울리지 않는다.
바이어가 고가의 소량제품을 급히 주문하면 성남공장이 발빠르게
대응한다. 국내 장갑업체로선 유일하게 갖춘
CAD(컴퓨터지원설계)시스템으로 장갑패턴을 결정짓는 레이저컷으로 원단의
기본틀을 만든다.
재단이 끝나면 성남일원의 홈워커운영체계가 풀가동된다. 봉제공정이
공장밖에서 1백여명의 숙달된 홈워커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이들
홈워커들은 총2백여대의 재봉기를 갖추고 4,5년씩 장갑만을 가공해온
고급기능인력들이다. 불량률이 낮을수밖에 없다.
다시말해 시즈는 "2만켤레의 스키장갑을 보름안에 선적해달라"는 바이어의
주문을 가볍게 받아들일수 있다. 특히 짧은납기의 주문은 상대적으로
고가의 적은 물량이어서 그만큼 부가가치가 높은 이점이 있다. 따라서
연간 이회사가 새로 생산하는 모델만도 1천가지가 넘는다.
이와달리 저가의 대량주문은 해외투자공장이 떠맡는다. 88년이후
동남아등지의 후발주자들이 저가품을 쏟아내면서 가격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시즈는 89년 경쟁력확보의 일환으로 스리랑카와 중국광동성에
생산공장을 세웠다.
이곳에서는 국내에서 들여간 원부자재를 이용,저가제품을 양산한다.
국내보다 생산성이 떨어지긴하지만 납기가 여유있어 각공정별 품질관리만
철저히 하면 저가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할수 있다.
이밖에 김주인사장의 유행을 앞선 소재선택에 대한 안목도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김사장은 일찍이 지난86년부터 텍스타일을 소재로한
제품생산에 주력했다.
가죽으로만 만들어지던 스키장갑의 소재가 텍스타일로 전환되면서 주문이
쇄도해 수출물량은 급속히 늘었다. 텍스타일소재의 스키장갑은 가격이
저렴하고 사용이 편리해 수요가 점차 늘어 현재 스키장갑 전체시장의 80%를
차지하고있다.
김사장이 스키장갑 생산에 나선 것은 지난77년. 가발업으로 70년에 처음
사업을 시작한 김사장은 과당경쟁에 따른 채산성 악화로 아이템 변신에의
필요성을 느낄때쯤 우연히 스키장갑 바이어를 만난다. 미국바이어인
콘로이씨는 첫오더로 가죽스키장갑 3만켤레를 주문했다. 당시로선 엄청난
물량이었다.
가죽장갑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김사장은 타업체에서 기술자를 데려오고
생산인력을 끌어모아 서둘러 제품을 선적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제품은 쓰레기판정을 받았고 10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업계에서는 "시즈가 섣불리 업종전환하다 클레임을 맞아 망하게 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장갑업계에는 "시즈라는 회사를
조심해야한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더이상 미국에서 거래할 수 없는
형국이 됐다.
김사장은 분하기도 하고 오기도 났다. 한번 시작한 일을 포기할 수
없다는 고집이 큰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싹으로 발전했다.
"그렇다면 스키장갑으로 유럽시장을 뚫어보자"고 마음 먹은게 이듬해인
78년.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스포츠용품쇼인 "이스포"전시회에 샘플
몇가지를 들고 찾은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다. 김사장은 비행기안에서
스키장갑업계를 장악해보겠다고 줄곧 되뇌었다. 그결과 1천켤레의 주문을
따냈다. 실망스러운 물량이었지만 모든 정성을 쏟아 제품을 만들어
보냈다. 그후 김사장은 고생한 보람을 찾을수 있었다.
"한국의 어떤 회사가 물건을 잘 만든다"는 소문이 유럽지역에 돌면서 독일
로이슈사등 굴지의 스포츠용품업체들이 79년부터 오더를 냈다. 유럽시장을
석권한 시즈가 미국시장을 다시 넘본 것은 지난 87년. 스키장갑 첫수출의
불명예를 씻는데 만10년이 걸렸다. 수출주력업체가 실추된 대외신용을
회복하는게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북 안동출신으로 66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김사장은 사법고시공부를
하다 적성이 맞지않는것 같아 이내 사업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가발업에서
장갑생산으로 업종전환하는데 성공한 김사장은 향후 5년이내에 세계 제일의
장갑메이커가 되겠다고 거듭 다짐한다.
<이익원기자>